[방송]MBC 새 일일극<결혼의 법칙>의 작가 문영남

  • 입력 2001년 4월 8일 17시 47분


"저는 가부장제를 믿는 철저한 보수주의자에요."

오는 5월부터 새로 시작하는 MBC 새 일일극 <결혼의 법칙>(가제)을 극본을 맡은 작가 문영남(41)은 일일극에 관한 한 '마이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작가이다.

그녀는 KBS 시절 <정 때문에> <바람은 불어도> 등 2편의 일일극을 모두 시청률 1위에 올려놨다. 그것도 1-2주 반짝 정상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몇 개월 동안 확실하게 정상을 지켰다.

보도국의 간판 프로그램인 '9시 뉴스'가 일일극 시청률에 민감한 영향을 받던 상황에서 KBS 보도국은 그녀 덕분에 희색이 가득했고, 상대적으로 MBC 보도국은 자사 일일극의 부진을 뼈아프게 받아들였다.

이번에 그녀와 손을 잡은 사람은 인간미 넘치는 연출로 유명한 장수봉 PD이다. 감각적이고 빠른 전개 보다는 차분하게, 하지만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연출자와 신산한 삶의 다양한 편린을 조용히 말할 줄 아는 작가의 만남. '실속없이 화려한' 드라마에 질린 시청자들에게 벌써부터 기대를 갖게 한다.

그녀가 장수봉 PD와 함께 준비하는 일일극 <결혼의 법칙>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 여인을 통해 결혼의 의미를 묻는 드라마이다.

"인생의 중요한 목표가 두 가지가 있죠. 하나는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생각해요. 저는 요즘 결혼의 신성함이 퇴색되는 것이 안타깝거든요. 아무렇게나 만나고 그 중 1/3이 이혼하고 그냥 만났다 헤어지는 것이 너무 일상화되고 있어요. 가정이 위기라는데 저는 그 원인은 결국 부부가 흔들린다는 것이고, 그것은 결혼의 법칙이 흔들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결혼의 유형을 통해 이 시대 가족과 부부란 무엇인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확고한 어조로 가족주의의 복원을 주장하는 그녀에게 "여자 작가로서 너무 보수적인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을 던졌다. 조금은 심술궂은 질문에 그녀의 대답은 예상보다 훨씬 강경하고 분명했다.

"저는 가장은 권위가 있어야 한다는 가부장제를 선호해요.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어머니는 어머니답게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때 그 가정이 제대로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엽기적인 가족 파괴를 통해 재미를 주기 보다는 평범한 가족의 삶에서 다양한 사건을 통해 재미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남자가 극중에서 주방일을 하는 모습이 자주 나오는 등 여성성을 갖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일상사의 사건에 대한 탁월한 묘사로 '3분에 한번 웃기고, 5분마다 울리는 작가'라는 평까지 듣지만, 문영남이 드라마 작가로 데뷔한 작품은 지금과는 달리 죽음이라는 꽤 무거운 주제의 단막극이었다. 이어 쓴 것이 92년 <분노의 왕국>. 그녀가 'MBC 문학상'에 응모해 당선된 작품을 직접 드라마로 각색한 것이다. 이관희 PD가 연출을 맡았던 이 드라마는 일본 국왕의 암살이라는 예민한 주제로 인해 많은 파란을 불러 일으켰었다.

"원래는 일일극에서 보여준 내용들이 제 색깔이에요. <분노의 왕국>은 공모전이라는 목적에 걸맞게 다소 무거운 소재와 메시지를 택했어요. 물론 보람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처럼 무거운 소재를 늘 드라마로 쓰기에는 벅차요."

그녀의 드라마는 아기자기한 전개와 함께 살갑게 와닿는 등장인물이 매력있기로 유명하다. 과격하지 않으면서도 곰살궂게 펼치는 대사는 문영남 일일극의 트레이드 마크. 그녀에게 드라마에서 그동안 보여준 아기자기한 일상의 사건과 다양한 인물들은 어떻게 취재를 했는지 물어봤다.

"저는 취재를 잘 안해요. 이것 저것 자료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취재하기 보다는 제가 가진 모든 상상력과 관심을 드라마에 집중해서 머리 속에서 그려내죠. 특히 드라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등장인물마다 성격과 말투, 연기 스타일, 행동의 버릇 등을 일일이 차별화 하는데, 인물의 구체적인 특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드라마의 성패를 좌우하죠."

내부에서 아디이어를 곰삭혀서 글을 써내다 보니 그녀는 드라마를 쓸때면 다른 모든 일을 다 제치고 오로지 글쓰기에만 전념한다고 한다. KBS 일일극을 쓸 때는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이가 학년이 바뀌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고 스스로를 자책한 적도 있다고.

이렇게 매번 드라마 한편에 모든 정력을 기울이다 보니 일일극 한 편을 마치면 체중이 7-8kg씩 주는 것은 보통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탈진해서 병원에 실려가 집필을 중단한 적은 없다고 하니 의외로 강단이 있는 셈이다.

그러면 있는 기, 없는 기 모두 모아 쓴 드라마가 끝나면 그 허탈감은 어떻게 채울까?

"왜 학교 다닐 때 시험 끝나면 밤새워 공부하느라 피곤했던 것 다 있고, 마냥 홀가분한 기분 있죠. 드라마도 그래요. 몸이 만신창이 되도 막상 끝나면 너무 가뿐하죠. 하지만 정작 많은 시간이 주어줘도 할 일이 없어요. 집에 칩거하는 스타일이라 별달리 나가고 싶지 않아요. 머리와 가슴 속에 남아있던 드라마의 그림자들을 지우느라 애쓰다 보면 다음 작품을 쓸 때가 되더라구요."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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