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 잡아끄는 「여관방 영화」,「모텔 선인장」등 붐

  • 입력 1997년 10월 24일 07시 49분


「서울 경기지역 숙박업소 주인들께 감사드립니다」. 요즘 한국영화의 엔딩 자막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문구다. 그만큼 여관이나 여인숙, 모텔 등에서 촬영하는 영화가 늘고 있다는 증거. 최근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받은 「모텔 선인장」을 비롯, 「마리아와 여인숙」 「홀리데이 인 서울」 「죽이는 이야기」 등 요즘 영화는 여관을 잠시 스쳐가는 장소가 아니라 주된 배경 및 소재로 애용한다. 「경마장 가는 길」 이후 최대 붐이다. 한 영화감독은 『예산 압박에 시달리다 보니 한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곳을 찾게 된다』며 『현대 젊은이들의 다양한 모습을 찾아내는데 여관만큼 적절한 공간이 없다』고 고백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관이란 단순한 숙박 장소가 아니다. 피곤에 찌들고 외로운 영혼들이 냉혹한 현실과 단절된 채 은밀한 접촉과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물론 그 휴식은 대부분 어둡고 불안하다. 그렇지만 이는 관객들의 관음증(觀淫症)을 부추기고 흥행을 꾀하는 영화제작자들의 이해와 맞아떨어져 잇따른 상품화가 이뤄지고 있다. 「창(娼)」이 임권택감독의 「도덕적 의도」와 별개로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것도 이런 「관객과의 공모」에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영화가의 해석이다. 그럼에도 예술로 포장한 이런 상품들은 개운치 않다. 영화평론가 변재란씨는 『돈을 덜 들이고 영화를 만드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데 유독 「여관 영화」들이 성행하는 것은 안일한 제작태도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산업적 측면에서 고사 지경에 이르렀던 일본 영화는 포르노에 약간의 예술성을 더한 「로망 포르노」를 만들어내 명맥을 유지했다. 우리 영화도 열악한 제작환경을 핑계삼아 다들 「여관 영화」에 빠져들지 않을까 우울해진다. 〈신연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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