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금 ㈜인성메디칼 회장우리나라 의료 소모품 시장에서 국내 제조회사들이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일회용 소모품 시장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병원들이 저가 제품을 찾다 보니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국내 제조회사들은 경영난에 부딪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신규 아이템이나 경쟁력 있는 제품들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기업들이 국내 총판을 두고 직접 공급하고 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이들 제품은 허가받기도 편하고 건강보험이 잘 적용돼 급여가를 높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의료 소모품들은 치료 재료나 상대 가치에 의해 제대로 된 가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행위료에 포함되는 제품이 많다 보니 사용에 제약을 받고 적정한 가격 보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은 1977년에 만들어진 낡은 건강보험 제도에 있다. 당시 국민소득이 1000달러에 불과했던 가난한 시절 의료기기를 세척·소독해 재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그 법이 5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 현재는 감염 예방과 환자 안전을 위해 일회용 의료기기 사용을 전면 확대했는데 당시의 의료 수가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의료 현장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주사기는 50원, 수액세트는 330원, 글러브는 200원 수준으로 동네 문구점에서 파는 장난감 주사기보다도 못한 가격에 공급되고 있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기관에서 사용되는 제품의 가격으로는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병원들은 저가 제품을 선호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검증되지 않은 중국산 저가 제품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국내 의료기기 제조업체들은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경쟁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으며 지난해 의료 파업 사태로 인한 수요량 감소는 이러한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의료 소모품의 급여는 수십 년 동안 환율 변동에 따른 소폭 인상(1∼2%) 외에는 물가 변동에 대한 인상률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수가(행위수가)는 계속해서 올려주면서 의료 소모품의 급여가는 왜 올려주지 않는지 의문이다.
일회용 의료기기를 제조하는 업체 중 매출 100억 원을 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로 국내 의료기기 제조업계의 사정은 열악하다.
필자는 40년 동안 ‘의료기기 국산화’가 애국이라는 신념으로 직원 가족과 함께 노력해 왔지만 현실적인 제도적 개선이 없다면 더 이상 기업을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의료기기 시장은 결코 작지 않다. 향후 비전이 매우 높은 시장이기에 국내 의료기기 회사의 경쟁력이 살아난다면 고용 창출 효과는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다. 정부가 중소기업의 절실함을 이해하고 지원해 준다면 고용 창출과 국민 건강 안전 등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최근 정부에서 의료기기 등의 보험 수가 및 의료 수가를 조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매년 언급되는 이야기일 뿐 구체적인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국내 제조회사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급여가 적용되지 않는 제품이 많아 저가의 수입 제품이 밀려 들어오는 상황에서 정부가 너무 소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환자의 안전은 반드시 보장받아야 한다. 의료 품질 개선과 국민 건강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필수 기간산업인 의료기기 기업의 자생력 확보를 위해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규제는 반드시 혁파돼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위한 의료 수가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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