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 공항에서 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한적한 마을 클라크스빌. 이곳에 있는 LG전자 테네시 공장에 들어서자 170여 대의 무인 운반로봇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로봇들은 사출된 플라스틱과 판금을 마친 철판을 쉴 새 없이 나르고 있었다. 자재는 수직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2층 부품 조립 라인으로 이동했고, 조립된 자재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완제품 제조 공정으로 이동했다.
축구장 13개 면적의 이 생산시설은 2023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등대 공장’으로 선정한 곳이다. 한국 기업의 해외 공장 가운데는 처음이었다. LG화학은 이 공장 인근에 미국 최대이자 미국 내 첫 자동차 배터리용 양극재 공장을 지어 연말부터 가동할 예정이다. 밤하늘에 불을 비춰 길을 안내하는 등대처럼 첨단 기술로 제조업의 ‘미래’를 이끄는 공장들이 LG에 의해 미 테네시주에 속속 건립되고 있는 것이다.
LG전자 테네시 공장 내 생산 공정의 모습. 이 공장은 세탁기, 건조기 등 연간 215만 대 생산 역량을 갖추고 있다. LG전자 제공이날 LG전자 테네시 공장의 완제품 조립 라인에서는 생산직 근로자들이 로봇이 수행하지 못하는 섬세한 배선 작업과 제품 검수를 하고 있었다. 모든 과정을 거쳐 완성된 세탁기와 건조기는 공장 끝에 도착해 출고를 기다린다. 자재 생산부터 조립, 검수, 패키징까지 한곳에서 ‘통합 생산’이 이뤄지고 있었다.
LG전자는 테네시주에 4억6200만 달러(약 6700억 원)를 투자해 가전 공장을 지었다. 2018년 600여 명을 채용해 세탁기 생산을 시작했고 2022년 건조기 생산 라인을 증설하면서 200여 명을 추가로 고용했다. 이 공장에서는 지금도 800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환경미화, 조경 등과 관련된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하면 LG전자가 이곳에서 만든 일자리는 1000개가 넘는다. 공장 관계자는 “대다수 근로자들이 테네시주 클라크스빌이나 바로 옆 켄터키주 출신”이라고 설명했다.
낯선 한국 기업은 도시 자체를 바꿨다. LG전자가 공장을 세우고 주민들을 채용하자 클라크스빌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일자리가 생기자 이주자가 늘어났다. 이들의 자녀를 위해 학교가 새로 생겼다. 일대 집값은 LG전자 공장 준공 직전인 2018년 대비 3배 가까이로 뛰었을 정도다.
LG는 테네시 일대를 ‘LG 생산거점’으로 만들고 있다. LG화학은 LG전자 공장 인근 170만 m² 부지에 약 2조 원을 투자해 전기차 배터리용 양극재 공장을 짓고 있다. 올해 말 상업 가동을 시작하는 이 공장은 직원 400여 명을 채용해 매년 6만 t(전기차 약 60만 대 분량)의 양극재를 생산할 계획이다. 2공장 증설 계획도 있어 채용 규모가 두 배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곳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곳에는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공장도 들어섰다. LG의 테네시 투자가 잇따르자 이 지역의 오스틴피주립대는 한국어 강좌를 신설하기도 했다.
● 투자 기업 위한 포럼도 개최
테네시주 등 미국 남부 주들은 기업과 일자리 유치를 위해 세금 감면과 부지 제공 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또 기업 활동에 장애가 되는 규제를 없애고, 전력이나 도로 등 인프라 관련 민원들을 ‘원스톱’으로 해결해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테네시주 남부의 또 다른 소도시 채터누가가 대표적이다. 채터누가는 도시 재생을 위해 세금 혜택과 무상 토지 제공이라는 당근을 제공해 2011년 폭스바겐 공장을 유치했고, 최근에는 마을 전체에 초고속 광케이블을 깔아 원격 근로자 등 외지인 유입에 성공했다. LG와 폭스바겐 등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 터전을 잡으면서 위스키, 컨트리 음악으로 유명한 테네시주는 동남부의 산업 허브로 변모하고 있다.
LG가 테네시주에 과감히 투자해 공장을 지은 것도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통 큰’ 투자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윤주 LG화학 최고지속가능전략책임자(CSSO·전무)는 이날 미 테네시상공회의소가 주최하는 ‘테네시 제조 포럼’에 참석해 “동일한 양극재 공장을 미국에 건설하면 한국보다 3배, 중국보다 5배의 비용이 든다”며 “LG화학이 미국에 투자한 것은 정부의 보조금이 중대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포럼은 기업과 주 정부, 학계 등 현지 관계자들이 모여 일자리 유치와 제조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할지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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