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발전 걸림돌은 전기 부족”… 전력망 확충 전세계 비상 [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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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발전을 제약하는 건 변압기와 전력 공급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최근 발언이다. AI 기술 발전 속도를 지금의 전력망이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란 뜻이다. 그의 경고대로 AI발 전력 부족 사태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 AI 열풍이 몰고 온 전력 부족

전력 수요 급증을 경고하는 건 머스크만이 아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는 1월 다보스포럼에서 “AI 기술엔 이전에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면서 “획기적인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지멘스에너지의 크리스티안 브루흐 CEO도 지난달 연례 주주총회에서 “전기 없이는 AI 기술 발전이 없다”며 전력 수요 급증을 예고했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개발해 사용하려면 천문학적 용량의 데이터를 보관하고 처리할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필요하다. AI 열풍은 곧 데이터센터 붐을 뜻한다. 이미 전 세계엔 약 8000개의 데이터센터가 있지만, 앞으로 훨씬 더 많이 추가돼야만 한다.

문제는 AI용 데이터센터가 전기 먹는 하마라는 점이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 서비스 이용엔 구글 검색보다 3∼30배나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24년 전기보고서’에서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사용하는 전력량이 2022년 460TWh에서 2026년 최대 1050TWh로 급증할 거라고 내다봤다. 이는 일본 전체의 전력소비량(2022년 939TWh)을 넘어서는 규모다.

데이터센터는 연중무휴 24시간 전기가 통해야 한다. 아무리 데이터센터 건물을 짓고 AI용 반도체를 깔아놔도 송전선이 연결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전력망은 금세 확장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새로운 전력망을 계획해서 구축하는 데는 보통 5∼15년이 걸린다.

‘전기 먹는 하마’ AI 데이터센터 경쟁… 전선 재료 구리값 껑충

“AI 발전 걸림돌은 전력”
천문학적 용량의 데이터 처리-보관… 신설 센터에 연결할 전력망도 필수
구리 선물가격, 2달 만에 15% 올라… 구리 대체할 초전도케이블 개발도
복잡한 인허가 절차와 전력설비의 부족, 지역 주민의 반발과 전기요금 인상 우려 등. 전력망 업그레이드를 지연시키는 요인은 한둘이 아니다. 대부분 국가에서 데이터센터 용량이 이미 포화상태이지만, 추가 건설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이유다. 부동산회사 CBRE는 “전 세계적으로 가용전력이 부족해서 데이터센터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전력망은 과부하가 걸리면 자칫 대규모 정전 사태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곳곳에서 신규 데이터센터 설립이 미뤄지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의 최대 전력회사 APS는 초대형 데이터센터 신규 사업을 당분간 보류한다고 밝혔다. 아일랜드 더블린시 역시 전력이 부족하단 이유로 이달 초 신규 데이터센터 설립 계획을 불허했다.

● 국내 전선기업 주가 들썩

전력 부족은 AI 기술기업엔 걱정거리이지만 다른 산업엔 호재이다. 전력 인프라를 위한 투자가 당분간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원자재 시장에선 구리 가격이 뛰기 시작했다.

8일 런던금속거래소에서 구리 선물 가격은 t당 9411달러. 두 달 만에 15% 상승으로, 9400달러 선을 돌파한 건 22개월 만이다. 구리 가격에 영향을 주는 중국 부동산 경기가 침체한 상황에서 이례적인 상승세다.

구리는 전선과 변압기에 모두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재료이다. 전력망 확장은 구리 수요 급증을 의미한다. 사모펀드 칼라일그룹의 제프 커리 에너지 부문 최고전략책임자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AI를 발전시키려면 구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원자재 중개업체 트라피구라의 사드 라힘 이코노미스트는 AI로 인해 구리 수요가 2030년까지 100만 t 추가될 거라고 전망한다. 씨티그룹과 골드만삭스는 최근 내년 상반기 구리 가격 전망치를 t당 1만2000달러로 높여 잡았다.

미국에선 발전회사 주가가 덩달아 활기를 띤다. 지난 15년간 제자리였던 미국 전력 수요가 AI 붐을 타고 빠르게 증가할 거란 전망 때문이다. 발전회사 비스트라 주가는 올해 들어 82.6%, 콘스텔레이션 에너지는 63.2% 뛰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AI 물결을 타고자 하는 투자자들이 이제 발전회사로 눈을 돌렸다”고 전한다.

국내에선 변압기 제조사에 이어 전선기업 주가가 최근 들썩인다. 전선기업 실적이 구리 가격에 연동되는 구조인 데다, 전력 케이블의 내수와 수출 수요 모두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서다. 대한전선 주가는 한 달 새 46.7%, 가온전선은 39.5%, 일진전기는 50.3%나 상승했다. 이유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2000년대 중반 이후 20년 만에 전선 업계에 사이클이 돌아왔다”고 평가한다.

AI발 전력난을 기회 삼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전선기업도 있다. LS전선은 구리 대신 초전도체를 사용하는 초전도케이블을 데이터센터에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초전도케이블은 구리선보다 가격이 비싼 대신 변압기·변전소가 필요 없다는 게 장점이다. LS전선 류철휘 박사는 “초전도케이블은 전자파를 발산하지 않기 때문에 민원 염려도 적다”면서 “엄청난 전기를 공급해야 하는 AI용 데이터센터 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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