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조합 사업관리 역할 강화해야 공사비 분쟁 넘는다[기고/김종훈]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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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전 건설산업선진화위원장)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전 건설산업선진화위원장)
최근 재건축, 재개발 시장에서 공사비 분쟁이 심각하다. 지금까지는 용적률 상향에 힘입어 추가로 아파트를 더 지어 분양함으로써 조합원은 본인 부담 없이 자기가 살던 집보다 10∼30% 큰 새 아파트로 이주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과도한 분담금으로 재건축을 포기하는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어느 재건축의 경우 기존 전용면적 111㎡를 보유한 조합원이 면적을 줄여 97㎡ 아파트를 받더라도 분담금이 12억 원 넘게 나온다고 한다. 재건축 사업이 중대 기로에 접어든 것이다. 언뜻 물가 상승이 공사비와 분담금 급등의 이유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주요 원인이 아니다. 근본 문제는 사업관리 능력이 부족한 조합이 시세차익만을 좇고, 전문가인 설계사와 시공사는 이를 방치하며 책임을 지지 않는 데 있다.

첫째로 지적할 것은 예산관리 문제다. 조합에서 설계, 시공 업체를 선정할 때 조합원들은 예산은 따져보지 않고 초호화 설계안을 제시한 설계사와 최고급 브랜드 건설사를 선택한다. 최근에는 스카이 브리지(공중 보도), 최고급 호텔에나 들어갈 루프톱 인피니티 풀을 적용한 설계안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층수도 50층 이상의 초고층을 선택하는 사례가 많다. 마감재도 고급 수입 자재를 사용한다. 이런 설계와 마감재 사용은 당연히 목표 예산 초과로 이어진다.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지적할 사항은 설계사와 시공사의 프로페셔널리즘 상실이다. 이들은 나중에 조합원이 어떤 어려움에 처하든 ‘수주 지상주의’로 접근한다. 외국의 유명 건축가를 동원하고 화려한 외관과 보여주기 식의 과다 설계안을 제시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예산 관리는 나 몰라라 한다. 입찰 당시 초기 설계안의 공사비가 얼마나 드는지 계산조차 하지 않는다. 일단 수주한 뒤 공사비를 올리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설계사와 시공사는 사업비 관리, 공기 관리, 품질 관리의 책임이 있다. 더 나아가 싸고 빠르게 좋은 품질의 상품을 제공하도록 혁신해야 한다. 미국 뉴욕에서는 30층 아파트를 1년에, 70층 주상복합 건물을 2년에 준공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세 번째로 발주자인 조합원의 역량 부족과 과도한 욕심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데도 주변에 비해 더 고급스러운 아파트를 만들어 입주 후 가격이 오르는 데만 기대를 건다. 건설 사업에서는 무엇보다 발주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발주 조직 내에 설계를 관리할 인력, 공사비, 일정을 관리할 프로젝트 관리 인력, 즉 사업관리(PM)를 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기존 조합 인력만으로는 경험이 많고 조직력이 강한 건설사, 설계사를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의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용적률 상향에 따른 증가분을 더 지어 분양하는 ‘용적률 게임’이다. 이 게임의 룰도 이제는 인구 변화, 사회 변화에 의해 바뀌고 있다. 특히 지방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이 게임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인구가 줄며 추가 수요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선의의 조합원이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모순이 많은 현재의 재건축 사업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발주자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전 건설산업선진화위원장)
#재건축 조합#공사비 분쟁#한미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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