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HUG가 갚아준 전세사기 보증금, 9263억중 82% 회수 못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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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가 키운 HUG 부실]
경매 넘긴 주택 4채중 1채만 낙찰
평균 405일 걸려… 총금액 16% 손실
10채중 7채는 악성 임대인 주택… “전세사기범 무거운 형벌 적용해야”

뉴시스
서울 강서구 A 빌라. 집주인 이모 씨는 2018년 3월 보증금 1억6800만 원에 전세 계약을 맺었지만 2년 뒤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세입자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반환보증(전세보증)에 가입된 상태. HUG는 세입자에게 집주인 대신 보증금을 먼저 돌려주고, 이를 회수하기 위하여 그해 10월 이 주택을 강제경매에 부쳤다.

하지만 이 돈은 바로 회수되지도, 모두 회수되지도 못했다. 경매가 15차례나 유찰되면서 1억8000만 원이던 감정가격이 792만 원까지 떨어졌는데도 낙찰자가 없었다. 낙찰가는 물론 보증금까지 내야 해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HUG는 보증금을 전부 돌려받는 걸 포기하고 경매를 다시 시작했고, 올해 9월에야 이 집은 1억2111만 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경매에 넘어간 지 3년이 지나서야 떼인 보증금의 72.1%만 돌려받은 것. 나머지 4689만 원은 HUG가 고스란히 손실로 떠안았다.

HUG가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돌려준 돈(대위변제액)을 받기 위해 경매에 넘긴 전세사기 주택 4채 중 1채만 낙찰된 것으로 나타났다. 경매에 따른 회수 실적도 저조한 가운데 경매가 그나마 끝난 주택도 400일 이상 걸려 떼인 보증금의 79%만 돌려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경매 중인 주택의 떼인 보증금은 9200억 원이 넘지만, 이 중 7600억 원은 여전히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경기 수원, 대전 등에서 대형 전세사기가 잇따르는 데다 지방 깡통전세 위험도 여전해 HUG 손실이 불면서 부실 우려도 커지고 있다. HUG 부실은 결국 세금으로 메워져야 하는 만큼 악성 임대인들의 전세사기로 국민 혈세가 축날 위기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 “경매에 부친 주택 전세금 81.8%는 미회수”


HUG가 31일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전세보증보험 출시 이후 경매 실행 세부내역’ 자료를 동아일보가 분석한 결과 HUG는 전세보증이 나온 2013년 9월부터 올해 8월말까지 대위변제액을 회수하기 위해 경매에 넘긴 주택이 총 4622채로 나타났다. 이 중 낙찰된 주택은 1221채로 전체의 26.4%에 그쳤다.

경매로 회수한 대위변제액도 미미하다. HUG는 금액으로 치면 총 9263억987만 원 규모의 주택을 경매에 부쳤는데, 이 중 81.8%인 7579억1593만 원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다.

경매에 낙찰되어도 회수까지 오래 걸린다. HUG가 집주인 주택을 경매에 넘긴 뒤 낙찰까지는 평균 405일이 걸렸다. HUG가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준 뒤 주택을 경매에 넘기는 경매 신청까지 6개월 정도 걸리는 걸 고려하면, 일부라도 돌려받는 데 약 1년 7개월이 필요한 셈이다. HUG는 한 채당 평균 대위변제액 1억7432만 원 중 1억3791만 원(79.1%)만 회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HUG는 경매가 끝난 뒤에도 해당 주택에 대한 소송 등으로 추가 회수에 나서지만 돌려받는 돈은 2021년을 기준으로 대위 변제액의 5% 수준에 그친다. 경매와 소송으로 대위변제액을 회수해도 총 금액의 약 16%는 고스란히 손실로 남는 셈. 현재 대위변제액 잔액(약 3조 원)을 고려하면 5000억 원은 공중분해될 위기에 놓였다.

아직 경매에서 낙찰되지 않은 주택들은 경매신청일로부터 평균 336일(31일 기준)이 지난 것으로 확인됐다. 보증금 1억8000만 원이 걸린 서울 강서구 B 빌라는 2021년 11월 감정가 2억2200만 원으로 경매가 시작된 후 2년 동안 8차례 유찰을 거치면서 3725만 원까지 최저가격이 내려갔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전세가격이 한창 치솟았던 시기의 보증금을 HUG에 돌려줘야 해서 빨리 낙찰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 HUG 손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악성 임대인’ 주택 손실이 더 커


특히 HUG가 경매로 넘긴 주택 중 전세 보증금을 상습적으로 떼먹는 악성 임대인이 소유한 주택은 총 3368채(72.9%)로 10채 중 7채가 넘는다. 일반 임대인을 대상으로는 떼인 보증금의 83.9%를 경매로 회수했는데, 악성 임대인으로부터는 76.6%만 돌려받았다. HUG가 악성 임대인에게 떼인 돈이 일반 임대인보다 훨씬 많은데, 그나마도 더 적게 돌려받고 있는 것. 악성 임대인이 전세사기 등을 목적으로 보증금을 시세 대비 비싸게 받은 탓으로 분석된다.

전세사기로 신규 전세보증 수요도 폭증하고 있는 만큼 HUG 손실이 더 큰 규모로, 더 빠르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홍 의원은 “HUG의 전세보증 대위변제가 늘면서 올해 상반기(1∼6월) 순손실(1조3281억 원)은 지난해 동기 대비 7배 이상 급증했다”며 “손실을 줄이기 위한 보증료율 현실화 및 차등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우병탁 신한은행 압구정역 기업금융센터 부지점장은 “대규모 전세사기범은 범죄단체조직죄 등 무거운 형벌을 적용하고, 검경이 주도적으로 징수 방안을 모색해야 혈세를 아낄 수 있다”고 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신 책임지는 보증 상품.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갚은 보증금은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거나, 경매를 통해 회수한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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