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제조업 부활에 철강수요 급증… 뜨거워진 US스틸 인수전[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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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스틸 “수많은 제3자와 접촉”
세계 2위 아르셀로미탈도 거론
철강노조 지지 美클리프스 유리
“韓日과 경쟁”… 독점 이슈 변수

미국 제조업의 상징이었던 철강기업 US스틸이 공개적으로 회사 매각에 나섰다. US스틸은 “수많은 제3자의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사진 출처 US스틸 홈페이지
미국 제조업의 상징이었던 철강기업 US스틸이 공개적으로 회사 매각에 나섰다. US스틸은 “수많은 제3자의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사진 출처 US스틸 홈페이지
미국 철강기업 US스틸 인수전이 본격화했다. US스틸은 미국 제조업의 번영과 쇠퇴를 모두 상징하는 122년 역사의 기업. 쇠락했던 미국 철강산업이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제조업 부활’ 정책 덕분에 활기를 되찾으면서 이번 인수전이 관심을 끈다.

● 미국 제조업의 상징이 팔린다
“수많은 제3자와 기밀 유지 계약을 체결하고 부분 인수와 전체 인수를 포함한 여러 제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US스틸은 29일(현지 시간) 이러한 내용의 주주 서한을 발송했다. 13일 회사 매각을 추진한다고 공개한 이후 의미 있는 입찰 제안이 여러 건 들어왔다고 밝힌 것이다. 이 회사 데이비드 버릿 최고경영자(CEO)는 “이사회와 경영진, 외부 고문은 이를 완료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1901년 설립 당시 역사상 최초로 자본금 10억 달러를 넘은 세계 최대 기업이었던 US스틸은 1, 2차 세계대전 특수와 미국 자동차 산업의 전성기를 누리며 1970년대 중반까지 번성했다. 하지만 1980년대 일본, 2000년대 중국 철강의 급부상으로 선두권에선 밀려난 지 오래다. US스틸의 지난해 조강 생산량은 1449만 t으로 세계 27위. 1위인 중국 바오우그룹(1억3184만 t)의 10분의 1 수준으로, 포스코(7위)나 현대제철(18위)에도 한참 못 미친다.

US스틸은 환경친화적인 전기고로 공정 전환에서도 한발 뒤처졌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수입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한 뒤로 수익성은 나아졌지만 경쟁력을 되찾진 못했다. 누코와 클리블랜드 클리프스에 이어 북미시장 3위에 머문다. 결국 US스틸은 “전략적 대안”이라며 회사 매각 추진에 나섰다.

● 미국 제조업 부활과 철강산업의 기회
인수전은 예상외로 흥행 조짐이다. US스틸의 강력한 경쟁자이자 북미 2위 철강업체 클리블랜드 클리프스가 13일 72억5000만 달러(주당 35달러)에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직전 종가보다 43%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 14일엔 미국 철강가공 업체 에스마크가 78억 달러를 제안하며 입찰에 뛰어들었다. 이어 세계 2위 철강기업 아르셀로미탈이 인수를 검토 중이란 외신 보도가 나왔다. US스틸 주가는 단숨에 30% 넘게 뛰었다.

3년 전 미국에서 철수했던 아르셀로미탈까지 재진출을 검토하는 건 최근 미국 철강산업 전망이 상당히 밝아졌기 때문이다. 그 배경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대표되는 미국 제조업의 부활이 있다.

자동차, 풍력발전소, 전력 인프라 등 미국에서 투자가 크게 늘고 있는 제조업 분야는 모두 철강을 필요로 한다. 건설 경기가 냉각됐는데도 미국의 철강 수요가 급증한 이유다. 미국의 신규 철강 주문은 지난해부터 줄곧 월 150억 달러 안팎을 기록해,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특히 수요가 급증하는 유망 분야는 전기차 관련. US스틸은 자동차 강판 생산량에서 미국 2위 기업일 뿐 아니라 2024년부터는 연 20만 t 규모의 전기강판 생산 공장을 가동한다. 전기차 모터에 꼭 필요한 전기강판은 최근 미국 시장에서 수요 대비 공급이 매우 부족한 제품이다. “미국 전기차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US스틸은)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2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했다. IRA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미국산 철강을 사용하면 추가적인 세제 혜택을 주는 조항도 포함하고 있다.

● 클리프스와 합병? 독점 위험은
US스틸은 아직 입찰자 명단을 공개하진 않았다. 다만 일찌감치 입찰 사실을 자진 공개한 클리블랜드 클리프스는 강력한 인수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미국철강노조 역시 “US스틸을 인수할 곳은 클리블랜드 클리프스뿐”이란 지지 성명으로 힘을 보탰다. 경쟁자였던 에스마크까지 23일 입찰 포기를 선언하면서 무게추는 클리블랜드 클리프스로 더 기울었다.

클리블랜드 클리프스의 로렌코 곤칼베스 CEO는 애국심에 호소하는 여론전을 펼친다. 그는 CNBC 인터뷰에서 “우리는 (덩치를 키워서) 한국산·일본산 철강과 경쟁해야 한다”면서 “US스틸 인수를 통해 세계 10대 철강회사 중 유일한 미국 기업을 탄생시키겠다”고 강조했다. 두 회사가 합쳐지면 연간 조강 생산량은 3100만 t 수준으로, 인도 타타스틸을 제치고 세계 10위에 오른다.

문제는 독점 위험이다. 미국 2위와 3위 철강기업이 합병한다면 미국 철광석 매장량의 100%를 소유할 뿐 아니라 미국 자동차 강판 시장의 60%를 차지하게 된다. 이유진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합병이 성사된다면 미국에서 전기강판을 생산하는 유일한 업체가 될 것”이라며 “미국 내 철강재 가격이 높아질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반독점 규제당국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두 회사의 결합을 가만히 두고만 보진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제조업 부활’을 내건 바이든 행정부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노조 지지를 얻기 위해 이들의 합병을 용인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J D 밴스 상원의원(공화당)과 로 카나 하원의원(민주당) 등 정치권 인사들 역시 “US스틸은 미국 기업이 인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철강산업의 부흥 조짐에 한국 산업계도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지난해 2890만 t의 철강을 수입한 세계 2위 수입국이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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