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中투자제한 반도체법’ 발등의 불… 삼성-SK “유예없인 타격”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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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지원받은 기업 10년 中투자 금지’ 이르면 이달중 세부지침 발표
삼성-SK 등 中 설비투자 길 막혀… 작년 장비수출 제한땐 1년 유예
전문가 “정부-기업 외교력 총동원을”

미국 ‘반도체법’ 세부 지침이 이르면 이달 중 나오는 것으로 알려지며 국내 반도체 업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미국 지원을 받으면 10년간 중국 투자가 제한되는 ‘가드레일’ 조항의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중국 생산 비중이 큰 삼성전자, SK하이닉스로서는 자칫 실행 불가능한 과제를 안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국회 및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이르면 이달 중 반도체법에 대한 세부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서명한 반도체법은 미국 내 반도체 관련 투자에 대해 527억 달러(약 67조 원) 규모로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대신 미국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으면 앞으로 10년 동안 중국 등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에 투자해서는 안 된다는 가드레일 조항을 지켜야 한다. 중국에서 공장 설비를 업그레이드하거나 새로 구축하는 활동이 금지되는 것이다. 각 기업은 반도체법에 따른 지원을 받을 때 이러한 내용을 명시한 계약서를 써야 하고 중국 또는 우려국에 투자 시 상무부에 보고할 의무를 진다.

상무부가 조만간 발표할 세부 지침에는 기업과 어떠한 기준으로 계약을 맺을지 상세한 가이드라인이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보조금 신청 방법 및 지급 시기에 대한 세부 내용이 공개될 예정이다. 무엇보다 법에서 28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보다 뒤처진 성숙 공정에 대해서는 가드레일 조항의 예외가 될 수 있다고 규정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 인정될지가 업계의 주요 관심사다. 예를 들어 낸드플래시 메모리칩의 경우 나노가 아닌 층수로 공정 수준을 따지기 때문에 법만으로는 예외에 해당되는지 알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 미국 안보 위협에 대한 판단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 우리 기업의 유불리가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해 당분간은 적용 유예 등 예외 조치를 받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미국이 지난해 10월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제한할 당시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해서는 1년 유예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를 생산하는데 이는 회사 전체 공급량의 40%다. SK하이닉스도 D램 생산량의 절반을 중국 우시에서 만든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가드레일 조항의 예외 적용을 받지 못할 경우 중국 설비 투자를 중단하거나 미국에서의 반도체법 지원을 포기해야 한다”며 “어느 선택지든 과도한 비용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국내 기업의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고 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가드레일 조항에 대한 우려는 지난해 9월 미 상무장관과도 만나 전달하고 계속해서 협의해 나가고 있다”며 “우리 기업들이 미국 정부와 협약을 맺을 때 불리한 조건에 따르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도 중국 규제의 실효성을 생각했을 때 계속 한국 기업에 예외를 주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당장 시급한 곳이 텍사스주에 170억 달러를 들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20년 동안 200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내 반도체 공장 11곳을 신설한다는 계획도 세워놓았다. SK하이닉스는 아직 착수한 투자는 없지만 미국에서 첨단 패키징 공장 신설을 준비 중이다.

삼성전자는 특히 대만 TSMC와의 경쟁을 위해 미국 정부의 각종 인센티브를 받는 게 중요하다. 최악의 경우 미국 반도체법 지원을 포기하고 큰 투자비 부담을 떠안아야 할 가능성도 있다.

TSMC는 지난해 말 400억 달러를 투입해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공장 두 곳을 세운다고 밝힌 바 있다. TSMC도 중국 난징에 공장 증설을 진행 중이지만 가드레일 조항의 예외인 28나노 공정의 생산라인이어서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낮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시안에서 100단 이상의 6세대급 낸드를, SK하이닉스의 우시 공장은 18나노 등 10나노 후반대급 메모리를 주로 생산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세부 지침이 나온 이후로도 각 이해당사자 의견을 수렴하는 기간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며 “유리한 조건이 마련되도록 기업들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외교 문제인 만큼 우리 정부의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中투자제한 반도체법#삼성#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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