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태호]공익직불제로 여는 농정 4.0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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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의 농지개혁을 근간으로 하는 농업·농촌정책을 ‘농정 1.0’, 그 이후 1980년대에 이르는 증산 위주 농업·농촌정책을 ‘농정 2.0’, 1990년대의 농산물 시장 개방에 따라 경쟁력 강화에 힘쓴 농업·농촌정책을 ‘농정 3.0’이라 한다면 이제 한국의 농업·농촌정책은 ‘농정 4.0’이 필요한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인구밀도가 높고 산이 많은 한국은 농업환경이 좋은 나라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 유엔식량농업기구의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농업생산액은 호주(245억 달러)나 캐나다(228억 달러)보다 높은 288억 달러로 세계 15위이고, ha당 농업생산액은 1만7000달러로 세계 최고이다. 이것은 한국의 농업인들이 농정 1.0, 2.0, 3.0을 거치면서 피땀 흘려 얻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 속에서 한국의 농업은 집중화, 집약화되고 있다.

농업생산자원인 농업인력과 농지가 경영능력이 높은 농가에 집중되는 현상은 농업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있으나, 인력과 농지를 확보하지 못한 농가가 소득을 높일 기회는 점점 감소하고 있다. 축산의 밀집화와 원예작물의 시설화로 대표되는 집약적 농업도 생산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축산폐기물과 온실가스의 배출, 과도한 플라스틱과 에너지 사용 등으로 인한 환경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자원배분의 악화와 환경부담의 증가는 농업소득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농촌환경을 훼손해서 우리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다. 농정 4.0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완화해서 우리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지켜내야 한다.

농업소득 양극화와 농촌환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안은 없을까? 공익직불제는 농업인이 농업·농촌의 자원을 이용하여 창출하는 환경 등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보상을 해 줌으로써 농업소득 배분 문제와 농촌환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현재 대다수 농업인의 환영 속에 시행되고 있는 기본직불제는 공익직불제의 1단계에 해당하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농업에서 지켜져야 할 기본적인 사항을 준수하는 대가를 지급하여 일정한 환경수준을 유지하는 효과를 얻고, 면적이 넓은 농가일수록 적은 면적당 금액을 지급하여 소득양극화를 완화시키는 성과를 얻고 있다.

공익직불제의 2단계는 기본직불제와 마찬가지로 공익직불제에 속하면서 기본직불제보다 더 강화된 의무와 보상을 부여하는 선택직불제이다. 선택직불제란 농촌의 경관, 환경, 생태, 문화, 전통 등을 보전, 창출하여 공익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행위에 대해 지불하는 것으로, 기본직불제보다 능동적으로 농촌환경을 개선하고 농가의 소득을 증진하는 방안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공익직불제는 자원 배분을 개선하고 환경을 지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농업기술의 발전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공익직불제가 시행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농업경영체 등록 자료에 의해 파악되는 농업·농촌의 실태는 새로운 농업인, 농지, 농가의 표준을 제공하고 있으며, 기본직불제에서 요구하는 준수사항들은 새로운 농업의 기준이 되고 있다. 이러한 표준과 기준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디지털 농업에 필수적인 빅데이터 구축의 기반이 되어 우리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명예교수


#공익직불제#농업·농촌정책#농정 4.0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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