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업 승계까지… ‘그물망’ 지침 만드는 이유는

  • 뉴시스
  • 입력 2020년 11월 16일 13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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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 중심인 해외 연기금…국민연금은 규정 세세히
연금 사회주의 등 논란 돌파법…'정량적 판단' 우려
기금위원들 "일률 적용 과도" "경직적 행사 우려돼"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후속조치로 투자기업 이사회에 대한 세세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어 그 배경이 주목된다.

국민연금은 핵심원칙 10개, 세부원칙 27개로 경영권 승계나 적대적 인수합병, 내부감사 등 상황별로 대응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관련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 내에서도 일괄적, 경직적인 가이드라인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국민연금이 해외 연기금과 달리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짜고 있는 이유는 원칙 중심만으로 주주권 행사를 하기에 큰 부담이 따른다고 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16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공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국민연금기금 투자 기업의 이사회 구성·운영 등에 관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수탁자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 코드)의 후속 조치 중 하나다. 지난해 12월 마련된 적극적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에 이어 이사회에 대한 세부적인 가이드라인 성격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연내 최종안을 마련해 의결할 계획이다.

가이드라인은 상장회사의 이사회 구성·운영, 이사·감사 선임 등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 공개하고, 이를 통해 투자기업의 예측가능성을 키우기 위해 마련된다는 설명이다. 가이드라인은 ▲주주 ▲이사회 ▲감사기구 등으로 3장으로 나눠 10개 핵심원칙과 그 아래에 27개 세부원칙으로 구성된다.


해외 연기금은 ‘원칙 중심’…국민연금은 27개로 쪼개 ‘세세히’

국민연금이 지난해 12월 마련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은 일반적인 해외 연기금과 비슷하게 행사 원칙을 마련한 것이었으나 이번 이사회 가이드라인은 10개 핵심원칙, 27개 세부원칙으로 구성돼 세세하게 짜였다.

구체적으로 핵심원칙은 주주 ▲주주의 권리 ▲공평한 대우 등 2개, 이사회 ▲이사회의 기능 ▲이사회의 구성 ▲사외이사의 책임 ▲이사 활동의 평가 및 보상 ▲이사회 운영 ▲이사회 내 위원회 등 6개, 감사기구 ▲내부감사기구 ▲외부감사인 등 2개로 구성됐고 그 하위 세부원칙은 27개로 이뤄졌다.

국민연금이 지난 8월 공시한 ‘국민연금기금 투자기업의 이사회 구성·운영 등에 관한 기준’ 자료에서조차 “해외 연기금은 원칙 중심의 가이드라인을 갖추고 있으며 구체적인 형태의 가이드라인은 아니다”라고 명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은 주주권행사 기준 ‘캘퍼스 거버넌스와 지속가능한 원칙(CalPERS Governance and Sustainable Principles)’에 따라 주주관여 활동을 수행한다.

네덜란드사회보장기금(PGGM)은 의결권, 주주관여, 주주소송에 대한 별도의 이행 가이드라인은 있으나 구체적 실행방안이 아닌 원칙 중심으로 기술해놓고 있다.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도 ‘책임투자 기반 원칙(Policy on Responsible Investing)’를 통해 책임투자에 대한 원리, 전략, 주주관여 등에 대한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연금사회주의 등 논란 피하려 세세하게…부작용 우려도

국민연금이 해외 연기금과 달리 원칙 중심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 못하고 세세하게 가이드라인을 구성한 것은 ‘연금 사회주의’ 등 개별 주주권 행사 때마다 불거지는 논란을 돌파하기 위해서로 보인다. 넓은 재량권을 가진 원칙 중심 가이드라인만으로는 정부 입김 논란, 자의적 판단 등의 논란을 마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27개 세부원칙 가운데 논란이 되는 규정은 ▲이사회는 최고경영자(CEO) 승계 정책을 마련해 운영하고 지속 개선·보완 노력한다 ▲회사는 소수주주가 지배주주에 비해 불공평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고 자본구조 변경, 분할·합병, 주식분할·병합 등에 있어 주주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등이 있다. 이외에도 내·외부 감사와 관련해 마련한 구체적인 지침과 이사회 내 위원회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채우는 것, 총주주수익률(TSR) 적정 수준 유지, 주주서한 공개 등도 논란이다.

국민연금은 CEO의 승계 정책을 마련하고 운영하고 명예회장 등 업무집행책임자의 승진, 해임, 신규위촉, 보직변경 등 주요 인사상의 의사결정에 대해 이사회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또 신주인수권 부여, 종류주식 발행 등 자본구조 변경안으로 주주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하고 적대적 기업 인수 등에 대해 경영진과 이사회를 보호하는 용도로 활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을 담았다. 또 내부감사위원회 투명 공시, 이사회 내 이사후보추천위원회 등 위원회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구성하고 주가수익률과 배당수익률을 합산한 TSR을 적정하게 유지하도록 요구했다.

기금위 위원들 사이에서도 경영계를 중심으로 이 세세한 가이드라인에 대해 지적이 제기됐다. 세세한 가이드라인은 정성적인 기업 가치 등보다 기계적인 판단을 통한 경직된 주주권 행사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철 기금위 위원(경영자총협회 상무)은 “기업의 규모, 지배구조 형태 등이 상당히 다양한데 기업들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려면 이 내용은 과도하다”며 “당사자들인 기업의 의견이 제대로 청취가 안 된 것 같아 의견을 듣는 보완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경상 기금위 위원(대한상공회의소 상무)도 “기준을 잘못 만들게 되면 진짜 기업가치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까지도 기준에 따라 일률적, 경직적으로 행사할 수 있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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