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청년]“공짜라지만”…전문성 없는 컨설팅에 두 번 우는 청년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2일 17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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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공짜라도 너무한 것 아닌가요?”

최근 정부의 취업지원프로그램 중 하나인 ‘취업성공패키지’에 참여중인 김경덕 씨(가명·27)는 자기소개서 첨삭 서비스를 받고 이렇게 토로했다. 자소서를 다 뜯어고쳐달라는 게 아니었다. 단지 기업이 입사지원자에게 궁금해 하는 점을 제대로 답했는지 객관적으로 조언해주길 바랬지만 도움이 안 되는 무성의한 답만 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취업컨설팅은 주로 대학창조일자리센터나 취업성공패키지에서 이뤄진다. 동아일보 청년드림센터와 일자리TF 취재 결과 청년들은 컨설팅의 수준이 낮거나 상담사가 자주 바뀌는 문제로 취업프로그램의 실효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 뻔한 자소서 컨설팅에 서류전형 탈락

본보는 김경덕 씨가 공공기관에 지원하기 전 취업 상담사에게 첨삭 받은 자소서 원본을 분석했다. 질문에 답하는 방식인 이 자소서에 김 씨는 총 2500자를 적어 담당 상담사에게 건넸다. 상담사는 8줄짜리 답변에서 뻔한 지적과 오자 수정, 어색한 칭찬만 나열했다.

예를 들어 ‘교내 팀별 활동 경험을 소개해보라’는 항목에 대해 김 씨는 ‘팀장으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고 썼지만 근거가 부족했다. 본인의 ‘적극성’을 보여주는 사례, 적극적으로 행동한 이유와 결과를 보강해야 했다. 하지만 상담사가 보내온 답변에는 ‘팀원들이 이렇게 이렇게 해서, 뭐 본인의 신뢰도가 더 높아졌다고 넣어주면 좋겠다’는 암호 같은 설명뿐이었다. ‘일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는 지 기술하라’는 항목에 대한 김 씨의 답은 시간과 보상 수준에 따라 정한다는 것이었다. 추상적인 데다 김 씨가 지원하는 공공기관 면접관으로선 동의하기 힘든 논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상담사는 ‘잘 썼다’며 토씨만 고쳤다.

김 씨는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상담사에게 자소서를 다시 봐달라고 요청했지만 10일이 넘도록 아무런 답도 없었다. 김 씨는 “전문성 없는 컨설팅이라면 안 받는 것보다 못한 것 아니냐”며 “믿고 따랐다가 계속 탈락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박주민 씨(가명·24)는 컨설팅 때마다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사는 박 씨를 만나면 항상 ‘희망직군이 무엇이냐’ ‘어느 회사를 지원했느냐’부터 시작했다. 불과 1주 전 나눈 이야기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상담 결과를 축적하지 않고 그때그때 1회성 상담을 하는 것이다. 기초 정보부터 설명하느라 상담은 언제나 원점만 맴돌았다.

● 취업 분야 지식없는 상담사

취재팀에 구직경험을 털어놓은 또 다른 청년들은 “친절하고 최선을 다하는 컨설턴드도 많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정보가 취업준비생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IT업계 취업을 준비하던 서정은 씨(29)는 취업성공패키지에서 몇 차례 상담을 받았다. 같은 IT 분야라 해도 희망 직무에 따라 배워야 할 과정이 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모르는 상담사는 서 씨의 진로방향과 무관하게 컴퓨터 교육과정을 추천해줬다. 디자인 직군을 희망하던 이보람 씨(31)도 디자인 학원을 추천해달라고 했지만 상담사는 “그 분야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결국 이 씨는 혼자 발품을 팔아 학원을 알아봤다.

국내 기업에 대한 상담도 부실하지만 외국계 기업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상담도 받기 어려운 형편이다. 최근 국내 대기업 입사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해외나 국내 외국계 강소기업에 들어가려는 청년들이 많아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서울 A대학창조일자리센터에서 상담 받은 조모 씨(22·여)는 “한국 기업과는 전혀 다른 외국계 채용방식에 궁금증이 많았지만, 컨설턴트가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했다”며 말했다.

●수시로 고용센터 옮겨다니는 상담사

운 좋게 전문성 있는 컨설턴트를 만나도 쉽게 담당자가 바뀐다는 점도 문제다. 지속적이 상담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헬스케어 업계 취업을 준비하면서 이 분야를 잘 아는 컨설턴트를 만났어요. 취업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분이 사라졌죠. 너무 당황해서 취업준비 커뮤니티에 ‘○○○ 선생님 어디 가셨나요?’라는 글을 올렸어요.”(최근 대학창조일자리센터에서 취업상담을 받은 학생 A 씨)

이는 2월 정부가 주최한 일자리대책 청년간담회에서도 이런 내용이 지적됐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 당시 한 참가자는 상담의 질을 높이기 위해 상담사 처우개선과 관리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상담사 중에는 월급이 200만 원도 안 되는 계약직이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고용센터 내부 관계자는 “상담사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선발되고 있어 서비스 지속성이 떨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 취업컨설팅의 질 높이려면…“전문 상담사 제도 도입해야”

구직난이 심해지는 가운데 취업준비생들이 취업 준비에 드는 비용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대입만이 아니라 구직 분야에서도 돈이 많은 가정의 자녀가 유리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공적 취업컨설팅 프로그램의 질을 높여야 취업 준비과정에서까지 돈 때문에 격차가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보가 취업정보업체 잡코리아를 통해 취업준비생 145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지난해 청년 1인당 취업준비에 드는 비용은 한달에 27만2300원으로 2년 전보다 4만4000원(19.3%) 늘었다. 정부의 일자리대책TF는 지난해 기준 월평균 취업 준비비용이 45만 원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취준생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취업컨설팅의 질을 높이려면 ‘전문 상담사’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하고 있다. 상담사의 역할이 단순 취업상담에 그치는 게 아니라 기업이나 공공기관과 유기적 관계를 통해 취업알선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청년일자리대책TF 정책참여단 회의에서도 “각 분야와 직무에 특화된 상담사가 배치된다면 효과가 높아질 것”이라는 건의가 있었다.

지난달 15일 발표된 청년고용촉진방안에도 비슷한 방안이 담겼다. 청년들의 취업 희망수요가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전문 상담사를 시범 도입하고, 이를 점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컨설턴트를 파견하는 업체를 선정할 때에도 상담경력이 긴 상담사 비율이 높은 기관을 우대 검토할 방침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상담사가 컨설팅 뿐 아니라 잡무까지 해야 하는 현 상황에서 전문역량을 발휘하는 건 쉽지 않다”며 “기업 인사담당자와 연결해주거나 심리상담을 해주는 등 분야별로 전문 컨설턴트를 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간위탁 방식으로 이뤄지는 취업상담의 질을 높이려면 위탁 기관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는 상담건수와 취업실적 같은 양적인 평가에 비중이 높지만 ‘취업알선에 따른 만족도’ 등 질적인 평가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취업 컨설팅을 찾는 궁극적인 목적은 상담 그 자체가 아니라 좋은 일자리로 취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취업상담 프로그램이 현재 위탁업체를 통해 진행되는데 학생들이 느끼기에 전문성 가졌다고 느끼기 어렵다”면서 “학생들의 서비스 평가에 기초해 위탁 기관에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운영방식을 바꿔야한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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