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부동산]안전진단 ‘기습강화’에…재건축단지 희비 엇갈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5일 1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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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인 4일 오후 서울 송파구청 당직실에 문정동 올림픽훼밀리타운 입주자대표회의 임원들이 들이닥쳤다. 다음날부터 안전진단 기준이 강화된다는 소식을 듣고 일요일에 부랴부랴 주민 1300여 명의 ‘안전진단 동의서’를 받아 온 것이었다. 하지만 구청 관계자는 “4일까지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은 단지만 기존 기준대로 안전진단을 받을 수 있다. 동의서만 갖고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 명일현대아파트는 2일 재건축 사전 절차로 한국건설안전협회에 정밀안전진단을 의뢰했다. 지난달 24일 용역을 발주한 지 6일 만이었다. 5일부터 시행된 강화된 안전진단 기준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막차 계약’을 맺은 것이다.

강화된 재건축 안전진단 평가 기준이 시장의 예상보다 일주일 정도 빠른 5일부터 전격 시행되면서 재건축을 추진하던 아파트 단지 사이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정부의 규제 방침이 나온 20일 이후 지금까지 서울에서만 16개 단지가 정밀안전진단 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용역을 냈다. 평가 항목 중 ‘구조안전성’의 배점을 늘리고 ‘주거환경’ 비중을 줄인 새 기준을 적용받아서는 재건축 첫 단계인 안전진단을 통과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평가 기준 개선안이 ‘기습 시행’되면서 일정을 맞추지 못한 대다수 단지들은 사업 추진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재건축 시장도 전체적으로 얼어붙을 가능성이 커졌다.

● 서울 16곳 중 6곳만 ‘막차 계약’

5일 조달청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이후 재건축 안전진단 용역을 공고한 16개 단지 중 4일까지 업체 선정과 계약을 마친 곳은 6개 단지 뿐이다. 5일 이후 계약을 맺은 아파트들은 강화된 기준에 따라 안전진단을 받아야 한다.

강동구에서는 2일 상일동 삼익우성과 명일동 현대가 계약을 마쳤다. 이들 단지는 지어진 지 30년이 되지 않아 재건축 연한에 미치지 못하지만 정밀안전진단을 받기 위한 예비안전진단을 관할구청으로부터 받은 상태다. 영등포구 여의도동 광장아파트(28번지) 등도 새 규제를 피하게 됐다.

반면 나머지 10곳은 기한에 쫓겨 계약을 맺지 못했다.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아파트는 6일 입찰해 10일 이전에 업체를 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규제를 피하지 못하면서 “재건축 사업을 멈추고 다음 정권 때까지 기다리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잠실동 B공인중개소 대표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대회시설로 지어진 아시아선수촌은 튼튼한 아파트로 유명하다”며 “강화된 구조안전성 평가를 통과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전했다.

●“안전진단 규제 피해도 시세 상승은 제한적”

새 규제를 피하지 못한 단지들에서는 5일부터 기존 시세보다 호가를 낮춘 매물들이 나오고 있다. 재건축 호재를 기대하고 집을 샀던 일부 투자자들이 매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올림픽훼밀리타운 전용면적 84㎡의 경우 지난달 말까지 최고 13억5000만 원(고층 기준)에 호가가 형성됐지만 이날 12억9000만 원에 매물이 나왔다.

기존에 안전진단을 받았거나 4일 이전에 용역업체를 구한 단지들도 반사이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다음달부터 서울 등 청약조정대상지역에서 양도소득세가 중과되는 등 재건축 규제 외에도 시장 악재가 많기 때문이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최근 1, 2년새 전반적으로 집값이 많이 뛴 상태여서 풍선효과나 반사이익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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