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 조작해 경영진·정치인 자녀 합격…시중은행 채용비리 22건 적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6일 22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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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진이나 정치인의 자녀를 합격시키기 위해 면접 점수를 조작하거나 합격자 수를 임의대로 늘린 시중은행들이 적발됐다. 불합격 대상인 명문대 출신 지원자를 뽑기 위해 멀쩡한 합격자들을 무더기로 탈락시킨 은행도 있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KB국민, 신한, KEB하나, NH농협, 대구 등 11개 국내 은행을 대상으로 채용비리 현장 검사를 실시해 5곳에서 22건의 비리 정황을 적발했다고 26일 밝혔다. 공공기관 채용 실태를 점검받는 국책은행과 외국계은행은 검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적발된 채용비리 가운데 청탁에 따른 특혜 채용이 9건으로 가장 많았다. A은행은 사외이사의 지인이 필기전형과 1차 면접에서 탈락하자 전형 공고에 없던 ‘글로벌 우대’ 항목을 신설해 필기전형을 통과시킨 뒤 면접 점수까지 조정해 합격시켰다.

B은행은 서울의 명문대 출신 지원자 7명이 불합격 대상인데도 면접 점수를 임의로 올려 합격 처리했다. 특히 이들을 뽑기 위해 다른 지역 대학 출신의 합격자 7명을 탈락시켰다.

채용 전형을 불공정하게 진행한 사례는 6건이었다. C은행에서는 인사 담당 임원이 자녀의 임원 면접에 직접 면접관으로 참여해 높은 점수를 줬다. 채용 인원을 임의로 늘려 정치인의 자녀를 최하위로 합격시킨 곳도 있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들이 직원 공채 과정에서 주로 경영진이나 거래처의 자녀, 지인 명단을 별도로 관리하면서 점수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특혜 채용을 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이번에 적발된 채용비리 정황을 수사기관에 넘기는 한편 채용 절차상 운영이 미흡한 은행들에 대해 제도 개선을 요구할 계획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우리은행 특혜 채용 의혹이 불거지자 은행권 채용비리 조사에 들어갔다. 당시 은행들은 자체적으로 부정 청탁 등의 채용 현황을 점검해 “문제가 없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은행권의 주장과 달리 이번 금감원의 현장 검사를 통해 채용 비리 정황이 확인되면서 후폭풍이 예상된다. 특히 채용 비리가 드러나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우리은행 외에도 KB국민, 신한, KEB하나 등 주요 대형 은행에서 모두 비리 정황이 적발돼 파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수사 결과 채용 비리 정황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은행장 등 최고책임자(CEO)의 거취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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