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대주주 과세 강화, 상승세 국내증시에 찬물 끼얹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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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법 개정안에 우려 목소리
주식 양도세 내는 외국인 범위… 상장사 지분 25%→5%로 낮춰
7월부터 매도금액 11% 부과 방침
지분 파악 어려워 증권사 곤혹… 글로벌IB “자금 이탈 가능성”
“펀드자금 빼야하나” 문의도

외국인 대주주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강화하기로 한 정부의 과세 방침에 모처럼 활기를 되찾은 국내 증시가 다시 움츠러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내국인과 외국인 투자자의 ‘조세 형평성’을 감안한 조치라고 하지만 벌써부터 글로벌 운용사를 중심으로 한국 증시에서 발을 빼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 상장 주식 팔면 11% 원천징수

23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상장기업 주식을 팔 때 양도세를 내야 하는 외국인 대주주의 지분 보유 대상을 현행 25%에서 5%로 낮추는 내용의 세법 개정안 입법예고 기간이 이달 29일 끝난다.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이르면 7월부터 외국인 투자자는 주식 매각 시점으로부터 과거 5년간 한 번이라도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적이 있으면 매도 금액의 11%나 양도 차익의 22% 중 낮은 금액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이에 앞서 올해 4월부터 내국인 대주주에 대한 양도세 부과 대상이 지분 1% 또는 종목당 보유 금액 15억 원 이상인 투자자로 확대됐다. 정부는 내국인과의 조세 형평성에 맞춰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양도세 강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비상이 걸린 건 양도세 부담이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매도 금액의 11%를 원천 징수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증권사들이 양도세액을 산정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이나 주식 매입 가격 등을 파악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의 40% 이상이 펀드 형태로 투자하고 있어 주식 실소유자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증권사들이 투자자의 지분이나 수익 등과 관계없이 일단 매도 금액의 11%를 원천징수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한국에서 자금 빼야 되나” 문의


이렇게 되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에 갖는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다. 세금 부담이 늘게 돼 한국 증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가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외국계 증권사 임원은 “벌써부터 글로벌 운용사 등 고객들로부터 펀드 자금을 빼야 하느냐는 문의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지표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지수를 산출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은 19일 “세법 개정안이 MSCI 신흥국지수 내 한국 비중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MSCI 신흥국지수를 좇아 움직이는 약 1조6000억 달러(약 1712조 원)의 글로벌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송승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MSCI가 이 지수에서 약 15%를 차지하는 한국의 비중을 낮추면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과 달리 미국과 영국, 중국, 홍콩 등 주요국은 외국인이 매각하는 보유 주식에 양도세를 물리지 않는다. 일본, 캐나다 등은 지분을 25% 이상 보유했을 때만 부과한다. 이들 국가 대부분은 과세 기준에 해당하는 투자자가 자진 신고하도록 돼 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금융 허브를 지향하는 나라들은 외국인 투자자의 거래 편의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과세 방침이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 과세 강화 영향을 받는 국가는 정부와 조세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호주, 홍콩, 싱가포르 등이다. 이들 국가의 투자 비중은 전체 외국인 자금의 20% 미만”이라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외국인#대주주#과세#증시#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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