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당 많은데도 기본급 오르는 ‘최저임금 아이러니’ 손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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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제도 개편안]전문가TF 제안 내용-배경

정부가 최저임금 제도 개편에 나서는 것은 이른바 ‘최저임금 인상의 역설’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고임금 근로자가 최저임금 인상 혜택을 받는 것을 차단해야 정부가 목표한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를 열 수 있고, 영세 및 중소기업의 피해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공청회 등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늦어도 내년 1월경 최종 개편안을 만들 계획이다. 고용노동부의 일정대로라면 2019년부터 최저임금 제도가 크게 바뀌게 된다. 하지만 노동계와 일부 여당 의원들은 “최저임금 1만 원이 될 때까지 현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 친(親)노동 정책 위한 투 트랙 전략

각종 친노동 정책을 펴는 문재인 정부가 경영계의 요구를 반영한 최저임금 개편 추진안을 제시한 것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피해와 부작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여야가 진통 끝에 최저임금을 정부가 직접 지원해 주는 ‘일자리 안정자금’ 예산 2조9707억 원을 내년 예산안에 반영했지만, 정부는 현금 지원이 아닌 간접 지원하는 방안도 만들어 내년 7월까지 국회에 보고하기로 약속했다. 2019년에는 최저임금이 시간당 8000원을 돌파할 것이 유력시돼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과 혁신 성장을 동시에 견인하기 위해 ‘투 트랙’ 전략을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최저임금 인상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내 임금체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산정 기준)가 선진국보다 좁은 데다 기본급이 적고 수당이 많은 현 임금체계로는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은 물론이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각종 친노동 정책을 추진하기가 버겁기 때문이다.

○ ‘최저임금의 역설’ 해소되나

내년 최저임금은 시급 7530원, 월급으로 환산하면 157만3700원(주 40시간 근무 기준)이다. 문제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최저임금의 역설’이 실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기본급이 140만 원으로 올해 최저임금(135만2230원)과 비슷한 생산직 가운데 정기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합하면 연봉이 4000만 원을 넘는 근로자가 적지 않다. 상여금과 수당이 기본급보다 많은 ‘가분수 구조’ 탓이다.

하지만 이 근로자도 내년부터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최소 157만3700원의 기본급을 받게 된다. 연봉 4000만 원인 근로자도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을 보게 되는 것이다. 현재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기본급만 포함될 뿐 정기상여금과 연장수당, 각종 복지수당(숙식비 등)은 포함되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다.

경영계는 정기상여금과 복지수당만이라도 산입 범위에 포함시켜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또 편의점과 음식점 등 영세 업종은 최저임금을 낮게 차등 적용하자고 수년째 주장했지만 노동계의 반대로 현실화되지 못했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전문가 태스크포스(TF)가 5일 내놓은 대안에는 정기상여금을 최저임금에 포함하고 업종별 차등화 등 경영계의 주장을 대폭 반영했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정기상여금을 포함하면 기본급 인상의 부담을 덜 수 있다.

다만 전문가 TF는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사업주에게 체불임금의 최대 2배까지 부가금을 근로자에게 지급하게 하는 안을 함께 제시했다. 최저임금의 산입 범위를 넓히되 이를 어기는 사업주에게는 강한 제재를 가해 ‘실질 최저임금’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 노동계의 반발 넘을 수 있을까

노동계는 산입 범위를 넓히는 것에 대해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려는 ‘꼼수’”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시급 1만 원을 먼저 달성한 뒤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못 박았다.

양대 노총은 국회 국정감사 당시 산입 범위 개편 필요성을 언급한 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의 사무실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어 위원장과 같은 의견을 낸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두고도 양대 노총은 ‘반(反)노동 세력’이란 낙인을 찍었다. 문재인 정부가 우군(友軍)인 노동계와 정면충돌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을 둘러싼 극심한 노사 갈등을 피하려면 아예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번 안에는 결정 구조와 관련한 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처럼 노사정 추천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기구에서 최저임금을 정하는 방식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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