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 “회사에 피 돌아야 활력”… 삼성, 세대교체 파격 물갈이 전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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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최대실적-권오현 자진사퇴]권오현 부회장 전격 사퇴 선언

13일 오전 10시 3분경 삼성전자 사내망에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명의로 ‘임직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삼성전자가 이날 오전 사상 최대 3분기 실적을 공시한 지 1시간여 만이다.

권 부회장은 글에서 “깊은 고뇌 끝에 삼성전자 대표이사직과 의장직, 디스플레이 대표이사직을 포함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며 “오랫동안 고민해왔고 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적었다. 권 부회장은 2012년부터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아 왔으며 2016년부터는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 부회장도 겸해 온 삼성전자의 최고참 최고경영자(CEO)다.

마침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쌍끌이’로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권 부회장이 사임 의사를 밝히자 재계는 물론이고 삼성 내부에서도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특히 권 부회장은 전날 저녁까지도 공식 일정을 소화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윤부근 신종균 대표이사 등 최고 수뇌부에도 사퇴 의사를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 이날 오전 내내 회사 안팎에선 당혹스러움과 혼란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권 부회장과 대화한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돼 경영 공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권 부회장이 최고참으로서 본인의 역할에 대해 오래 고민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오너를 대신해 회사가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2년 넘게 인사 적체가 이어지고 있는 회사 내부 사정을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권 부회장은 “인사를 하지 못한다는 건 회사에 피가 돌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회사의 활력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권 부회장은 이 같은 의견을 이미 여러 차례 이 부회장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권 부회장은 “이 부회장도 나의 이런 결정에 대해 충분히 이해해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 부회장은 8월 말 이 부회장을 면회했다.

권 부회장은 이 부회장과 사퇴 방식에 대해서도 사전에 논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주요 기업의 이사진이 자신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미리 거취를 밝히고 후임자 추천 등을 준비할 시간을 주는 방식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보도자료에 “권 부회장은 조만간 이 부회장을 포함한 이사진에 후임자를 추천할 계획”이라고 적었다. 삼성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톱다운 형태의 기존 삼성전자 인사 방식과는 다른 이례적인 표현”이라며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추구해 온 이 부회장과 권 부회장의 스타일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삼성전자는 이달 31일 이사회에서 새로운 주주환원 정책을 확정짓는 한편으로 권 부회장 후임자 추천 관련 논의를 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권 부회장이 세대교체를 위해 사퇴 의사를 밝힘에 따라 오랜 시간 적체됐던 삼성전자 인사에도 물꼬가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인사팀은 이미 임원 인사 작업에 돌입했으며 이르면 다음 달 초 인사를 낼 것으로 전해졌다.

인사 폭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수감 중인 이 부회장의 경영 구상이 반영된 사실상 첫 인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이 갑작스레 쓰러졌던 2014년 이후 사장단 인사를 소폭으로 진행해 왔다. 재계 관계자는 “아버지의 인사를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이 부회장이 사실상의 총수 역할을 해 온 뒤로도 큰 폭의 인사를 내지 못했다”고 해석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이 부회장식 인사가 전격 단행될 것이란 기대감이 많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여파로 비상경영이 이어짐에 따라 아예 인사를 내지 못했다.

재계에서는 그동안 실용주의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해 온 이 부회장의 경영철학에 따라 연차와 나이에 관계없는 파격적 인사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꼭 내부 출신이 아닌 외부에서 새로운 인물을 데려올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이달 말로 이 부회장이 등기이사에 오른 지 만 1년이 되기 때문에 삼성전자 경영에 자신의 색채를 본격적으로 반영하는 시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에선 미국 실리콘밸리 삼성전략혁신센터(SSIC) 등이 이 부회장식 경영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본다.

권 부회장도 이날 “지금이 바로 후배 경영진이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할 때”라고 적어 세대교체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현재 권 부회장 아래로는 김기남 반도체총괄 사장이 반도체 사업을 맡고 있다. 권 부회장은 이 부회장 대신 그룹을 대표하는 역할도 맡아 왔기 때문에 이 역할을 누가 맡느냐도 관심사다.

권 부회장은 1985년 미국 삼성반도체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해 32년간 삼성전자의 반도체 역사를 함께해 온 상징적인 인물이다. 삼성전자 시스템 LSI사업부 사장과 반도체 사업부 사장을 거쳐 2012년부터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아 왔으며 2016년부터는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 부회장도 겸해 왔다. 권 부회장은 “1985년 입사했을 때가 반도체 사업 초석을 다질 때였다. 그로부터 32년 동안 무수한 도전과 실패, 성취를 통해 세계 반도체 산업 주역으로 우뚝 섰다. 그 과정에 참여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지현 jhk85@donga.com·김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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