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 아닌 데이터 선택”… 롯데 새 맥주의 ‘깔끔한 맛 반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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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맛’ 선도해온 롯데, 라거맥주 ‘피츠 수퍼클리어’ 출시

롯데주류는 최근 소비자데이터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깔끔한 맛’을 내세운 라거 맥주 ‘피츠 수퍼클리어’를 선보였다. 롯데주류 제공
롯데주류는 최근 소비자데이터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깔끔한 맛’을 내세운 라거 맥주 ‘피츠 수퍼클리어’를 선보였다. 롯데주류 제공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 롯데주류는 약 3년 전 클라우드를 출시해 ‘깊고 풍부한 맛’을 전면에 내세우며 소비자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최근 롯데주류에서 신제품을 출시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맥주 애호가들은 당연히 상온에서 발효해 맛과 향이 강한 ‘에일’ 맥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에일 열풍’이 거세다는 보도가 많이 나온 데다 ‘힙’한 지역마다 들어서는 수제 맥줏집의 난립은 이미 대세가 기운 게 아닌가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반전이었다. 롯데는 사람들의 예측과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달 들어 롯데는 전형적인 한국형 맥주, 청량감이 강하고 소주를 타 ‘소맥’ 만들기에 좋은 맥주, 양념 맛이 강한 한국의 안주와 잘 어울리는 라거 맥주인 ‘피츠 수퍼클리어(Fitz Super Clear)’를 출시했다. 라거 맥주는 저온에서 발효해 오랜 시간 저장할 수 있는 맥주로 ‘시원한 맛’이 특징이다.

왜 롯데주류는 클라우드로 구축한 ‘향과 맛이 진한 고급 라거 맥주’ 이미지를 확장해 에일 맥주 시장으로 진출하지 않고, 카스(오비맥주)와 하이트(하이트진로)가 양분하다시피 하고 있는 ‘한국형 라거’ 시장으로 들어갔을까.

○ 직관이 아닌 ‘데이터’를 따랐다

대세론은 언제나 과장되기 마련이고, 그러한 과장된 대세론에 따른 직관은 틀리기 십상이다. 맥주시장도 딱 그랬다. 현재 다수의 맥주 소비자가 깊고 진한 향의 에일 맥주를 선호할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르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A대형마트에서 소비자들이 구입하는 맥주 1위부터 20위까지가 국산과 수입을 모두 포함해도 라거 계열인 경우가 많다”며 “개별적으로 수제 맥줏집 등에서 에일 맥주를 마시는 문화가 확산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맥주의 주류시장은 라거”라고 말했다. B대형마트 관계자는 “2017년 1분기(1∼3월) 수입맥주 매출순위 톱10 중 7개가 라거였고, 나머지가 에일(2개), 흑맥주(1개)였다”며 “이런 추세는 연중 거의 비슷하게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국산 맥주는 맛이 없고 밍밍한 반면에 에일 계열의 다양한 수입 맥주는 맛과 향이 깊다’는 얘기가 ‘정설’처럼 떠돌고 있지만 대형마트에서 구입하는 소비자들의 선택은 이와 다르다는 얘기다.

롯데의 전략적 선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또 다른 요소는 소비자 조사 결과였다. 롯데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전체 맥주 소비자 중 2013년 21.5%였던 ‘풍부한 맛 추구 집단’의 비율은 2016년 12.8%로 거의 반 토막이 났다. 반면 ‘옅은 맛 추구 집단’과 ‘깔끔한 맛 추구 집단’의 비율은 각각 16.2%, 18.7%였다. ‘옅은 맛 선호’만 놓고 보면 2013년 조사에 비해 1%포인트 정도 줄었다. 하지만 2013년 조사에는 ‘깔끔한 맛’ 집단을 따로 분류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옅은 맛’ ‘깔끔한 맛’ 등의 선호 현상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에일 맥주 특유의 ‘깊고 진한 맛과 향’과 반대되는 성향으로 소비자들의 기호가 이동했다고 해석되는 대목이다. 또한 맥주가 전체 주류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포인트 가까이 증가했으며,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과일소주와 맥주 등 저도주 선호 현상이 강화되고 있었다.

○ ‘주류의 주류시장’에 도전하다

3년 전 등장한 클라우드는 한국 맥주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많은 호평과 인기에도 불구하고 ‘맥주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주류 판매의 약 50%를 차지하는 음식점과 주점 등에서 카스와 하이트라는 ‘골리앗’을 넘어서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견고하게 쌓아온 오비와 하이트진로의 맥주 유통영업망에 신규 맥주 사업자가 끼어드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유통망과 영업망의 판로 확대 노력 이외에도 소비자들이 찾게 만드는 맥주, 특히 ‘소맥용’으로도 어울리는 제품이 필요했다. 클라우드로 구축해 놓은 ‘오리지널 그래비티’ 공법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살리되 ‘범용성 높은’ 제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계속 나왔다.

롯데가 보기에 경쟁 브랜드들은 ‘부드럽다’ ‘목 넘김이 좋다’ 등의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깔끔한 맛’과 ‘잡미가 없는 맛’ 부분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고 있지 못했다. 롯데가 피츠의 차별화 포인트로 ‘깔끔한 맛’과 ‘잡미 없는 맛’을 선택한 이유다.

‘가정이나 식당·주점에서 소주를 타서 마실 수도 있고, 깔끔하게 입가심하기 위해 마시고 싶은 맥주’로 피츠를 자리 잡게 하는 게 롯데의 전략이었다. 롯데주류 관계자는 “피츠는 ‘깔끔한 맛’으로 기존 소맥용 맥주 수요를 잡는 것은 물론이고 입가심용 혹은 갈증해소용 맥주라는 새로운 포지셔닝을 동시에 해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식음료 분야 전문가인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클라우드 맥주는 수입 라거 맥주, 동네 수제 에일맥주와 경쟁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시장 확대가 쉽지 않다”며 “결국 롯데가 ‘소맥폭탄용’ 시장을 공략하기로 한 것은 필연적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포지셔닝 전략도 중요하지만 영업력 확대에도 앞으로 많이 신경 써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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