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CEO만을 위한 中企정책 안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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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지·산업부
정민지·산업부
“채용공고를 냈는데 사람이 안 와서 큰일입니다. 필요한 ‘티오(TO·정원)’의 반도 못 채운 부서들은 지금 비상이에요.”

얼마 전 여의도에서 만난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한숨을 쉬며 혀를 찼다. 회사가 신사업에 진출하면서 경력 직원 수십 명이 필요해 채용공고를 냈는데 회사가 원하는 인재들이 오지 않아 고민이라는 것이다.

얘기를 더 들어 보니 이 회사가 원하는 인재의 눈높이는 꽤 높았다. 우선 업계 1위 기업에서 인재를 빼오고 싶어 했다. 여기에 별다른 추가 교육 없이도 바로 현업에 투입할 수 있는 인재, 특히 ‘경력 시장’에서 가장 탐내는 5년 차 정도의 ‘대리급’ 경력자를 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기업은 업계에서 처우에 비해 일이 많기로 유명하다.

산업 현장을 취재하다 보면 이처럼 구인난을 겪고 있다며 아우성치는 중소·중견기업을 많이 보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중소기업중앙회를 찾아 이 같은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중소기업 천국을 만들겠습니다’라고 방명록에 적었다. 중소기업이 2명을 채용하면 3번째 채용하는 직원의 임금 전액을 정부가 3년간 대주겠다는 이른바 ‘2+1’ 공약도 내걸었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이 과연 중소기업 근로자에게 진정 도움이 되고, 젊은 인재들이 중소기업을 찾게끔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을까. 주변에 중소기업에서 일하다 그만둔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 이유는 하나같이 ‘회사에 미래가 없어 보여서’였다.

이들을 가장 지치게 한 것은 직원을 소모품처럼 여기는 중소기업 대표들의 인식이었다. 지금 중소기업계가 요구하는 지원책 대부분은 중소기업 근로자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좀 더 편하게 경영할 수 있도록 ‘울타리’를 쳐 달라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보인다.

다음은 한 중소기업 관계자의 얘기다. 중소기업 대표들이 모이는 한 행사장 주차장이 고급 승용차로 쭉 들어선 일이 있었다. 그러자 주최 측에서 “다음 행사부터는 건물 바로 앞에 주차하지 말고 지하주차장이나 옆 건물 같은 ‘안 보이는 곳에’ 주차하라”고 공지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중소기업 지원책들이 소수 중소기업 사장들 배만 불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씁쓸한 단면”이라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신설이 유력해지면서 중소기업 정책이 대거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 대표들로 구성된 단체들이 요구하는 사항이 중소기업계 전체를 위한 것인지 철저하게 옥석을 가리는 검증이 필요한 시기다.

정민지 기자 jmj@donga.com
#중소기업#ceo#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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