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0도 강판, 20초만에 120도로 ‘담금질’… 강도 2.5배 쑥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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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핫 스탬핑’ 생산현장 르포

현대제철 예산공장에서 현대자동차 신형 i30에 쓰이는 차체 측면 보강재가 핫 스탬핑 공법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김도형 현대제철 자동차부품기술팀 차장은 “제대로 된 온도까지 가열된 뒤 공정이 이뤄지는지를 열 영상 감지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점검하며 작업한다”고 설명했다. 예산=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현대제철 예산공장에서 현대자동차 신형 i30에 쓰이는 차체 측면 보강재가 핫 스탬핑 공법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김도형 현대제철 자동차부품기술팀 차장은 “제대로 된 온도까지 가열된 뒤 공정이 이뤄지는지를 열 영상 감지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점검하며 작업한다”고 설명했다. 예산=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30m 길이의 가열로를 5분간 지나온 강판 2개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튀어나왔다. 온도를 색으로 보여주는 열(熱) 영상에서 붉은색과 노란색을 넘어 하얗게 보일 정도로 뜨거운 쇠. 섭씨 950도에 이른다. 4개의 로봇 팔이 재빠르게 강판을 집어 들었다. 바로 옆 기계에 올려놓자 육중한 기계가 강판을 내리눌렀다. 1200t의 힘이다. 동시에 기계 내부를 순환하는 냉각수가 달아오른 강판을 식혔다. 불과 20여 초 만에 120도 전후까지 온도가 떨어졌다.

 철강 제품을 뜨겁게 눌러 가공한다는 뜻의 핫 스탬핑(Hot Stamping) 공정이 진행되는 실제 모습이다. 이 과정을 거치며 성형(成形)까지 끝낸 강판은 강도가 2.5배 이상 높아진다. 최근 출시되는 차량마다 사용량을 늘렸다고 내세우는 초고장력(超高張力) 강판 중에서도 가장 높은 강도를 자랑한다.

○ 가장 단단한 쇠 만드는 현대판 담금질

 2000년 이후 본격적으로 차체에 적용된 핫 스탬핑 강판은 지난해 세계적으로 3억5000만 개가량의 제품이 소비됐다. 차량 경량화 흐름 속에 2020년에는 소비량이 6억 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쓰임새가 늘고 있는 초고장력 강판 생산과 연구 현장에서는 ‘가볍고 단단한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열기가 뜨겁게 느껴졌다.

 지난달 23일 현대제철 예산공장의 17개 라인에서는 핫 스탬핑 기계가 쉴 새 없이 뜨거운 강판을 찍어 누르고 있었다. 현대제철은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이 공장과 울산공장 등에서 핫 스탬핑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생산량이 국내 최대다.

 현대·기아자동차의 경우 30kg/mm²급의 인장강도를 일반 강판으로, 60kg/mm² 이상을 초고장력 강판으로 분류한다. 60kg/mm²는 사방 두께 1mm의 가느다란 강판 가닥이 60kg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강도를 뜻한다. 핫 스탬핑 공정은 인장강도 60kg/mm² 수준의 강판을 150∼200kg/mm²까지 높여준다. 초고장력 강판의 최종판 혹은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다른 물질을 첨가한 것도 아닌데 강도가 높아질 수 있는 비밀은 쇠의 고유한 특성에 숨어있다. 이론적으로 쇠를 850도 전후로 가열하면 구조상 가장 무른 상태가 된다. 이를 급속도로 냉각시키면 가장 단단한 상태로 변한다. 강판 조직의 구조가 변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김도형 현대제철 자동차부품기술팀 차장은 “기본적으로 대장간에서 사용한 것과 같은 원리지만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쇠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얘기했다.

○ 고부가가치 車 강판… 새 강종 찾고 다른 소재 연구

 단단한 강판은 결국 더 가볍고 안전한 차량을 만드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 강판과 고장력 강판으로 차량을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엔 180kg/mm² 수준에 이르는 강판도 차량에 쓰인다. 최대 5배 이상 단단한 쇠로 차체를 만드는 셈이다.

 이날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 기술연구소에서 만난 민병열 부품개발지원팀 부장은 “미래 자동차의 핵심 개념인 고연료소비효율과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철강 제품의 업그레이드”라고 설명했다. 가벼우면서도 더 단단한 차체 소재는 안전성뿐만 아니라 높은 연비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초고장력 강판 적용 비율을 44%까지 높여서 출시된 기아자동차의 올 뉴 모닝은 기존 모델에 비해 30∼40kg 경량화에 성공했다. 차량 중량이 10% 줄면 연비는 3%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강도 강판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최근 철강사들은 새로운 강종(鋼種)을 개발하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현대제철은 AMP(Advanced Multi-Phase)강을 개발해 양산을 준비 중이다. 100kg/mm² 이상의 인장강도를 가진 철강 제품을 뜻하는 ‘기가스틸’을 앞세운 포스코는 TWIP(Twinning Induced Plasticity)강을 개발해 생산 중이다. 모두 일반강에 망간을 첨가하는 등의 방법으로 강도를 높이면서도 성형성을 확보했다.

 민 부장은 “마그네슘과 알루미늄 같은 소재는 물론이고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에 금속을 붙이는 방법까지 다양한 방향의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예산·당진=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현대제철#핫 스탬핑#예산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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