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배 회장, 과학재단 설립해 인재 키운다…사재 3000억 출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일 19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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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이제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성장했고, 재단에서 지원을 받은 과학자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바랍니다. 그런 순간에 같은 자리에 있게 된다면 영광일 것입니다. 노벨 과학상을 받는 한국인 과학자가 나오기까지 20년, 30년이 걸리더라도 지원하겠습니다.”

1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경배 과학재단’ 설립 기념행사에서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오래 전부터 꿈꿔온 것을 실행에 옮기려 한다”며 벅찬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서 회장은 사재 3000억 원을 출연해 생명과학 분야 연구를 지원하는 이 재단을 만들었다. 기금은 서 회장이 가진 지주사 아모레퍼시픽그룹과 주력 회사 아모레퍼시픽의 서 회장 보유 우선주(1000억 원)와 보통주(2000억 원)를 매각해 마련한다.

서 회장은 “어린시절 TV에서 나오던 만화영화 ‘아톰’을 보며 과학에 대한 흥미를 느꼈고,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다”며 “그중에서도 특히 학창시절 생물 과목에 대한 개인적인 흥미를 갖고 있었는데, 이번 과학 재단도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재단을 돌보겠다는 의지로 빌 게이츠 재단, 록펠러 재단처럼 이름을 넣은 재단명을 지었다”라고 설명했다.

재단 이사장은 서 회장이 맡는다. 김병기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강봉균 서울대 자연과학대 교수, 오병하 KAIST 생명과학과 교수가 이사직을 맡는다. 서 회장은 “아모레퍼시픽은 매년 예산의 3%를 연구비에 할당해 자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에 재단과 화장품 사업은 철저히 분리해서 운영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창업자인 서성환 선대 회장이 출연한 사재를 바탕으로 장학재단과 복지재단 등을 운영해왔다. 하지만 아들 서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공익재단을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 회장은 이 재단을 통해 생명과학 분야의 신진 과학자를 발굴해 기초과학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계획이다. 매년 젊은 과학자 3~5명을 선발해 과제 1개당 최대 25억 원(5년 기준)의 연구비를 지원한다.

서 회장은 “이 재단이 3000억 원을 기반으로 시작하지만 동참하는 이들을 늘려 1조 원으로 규모를 키워갈 것이다”라며 “50년, 100년을 이어가며 수십조 원 규모의 기금으로 운영되는 외국의 재단들처럼 키워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 그는 “힘들게 벌어서 회사를 키워온 만큼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멋지게 쓰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화장품 회사를 이끄는 서 회장이 생명과학 분야 지원에 나선 것은 서 선대 회장이 과학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했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은 1991년 노조 총파업으로 회사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당시 회사 장부상에 남은 돈은 500원이 전부였다. 이처럼 회사 살림이 어려울 때 선대 회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중앙연구소를 설립(1992년)했다. 이 연구소가 희망의 불씨가 됐다. 1997년 연구소가 내놓은 ‘아이오페 레티놀 2500’이라는 제품이 크게 인기를 얻으며 아모레퍼시픽이 회생의 기회를 얻었던 것. 서 회장은 “당시 선대 회장은 어려울수록 미래에 투자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회사를 먹여 살릴 연구소를 만들었다”며 “과학의 발전이 곧 희망이라는 것을 그때 배웠다”고 말했다.

재단은 올해 11월 첫 지원 대상 모집공고를 내고 내년 1, 2월 서류접수를 거쳐 6월에는 최종 선정자를 발표한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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