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참여” 정부 요청에도… 사모펀드들 시큰둥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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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産銀과 투트랙’ 당국 구상 차질

국내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PEF)의 덩치가 4년 만에 갑절로 커졌지만 해운 및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역할은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 당국은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과 PEF가 짝을 이뤄 부실기업의 경영 정상화를 유도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지만 국내 PEF들이 몸을 사리면서 차질이 생겼다. 국책은행의 부담을 덜고 상시적 구조조정 체제를 가동하려면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PEF의 참여를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PEF가 펀드 출자로 약정한 금액은 58조5000억 원이며, 실제 투자가 집행된 금액도 12조8000억 원에 이른다. 2011년 31조8000억 원이었던 약정 금액이 4년 만에 두 배 가까이로 증가하는 등 시장이 빠른 성장세를 보인 것이다. 국내 PEF의 역할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졌다. 외국 PEF처럼 정상 기업뿐 아니라 부실기업을 인수해 재무와 사업구조 등을 개편하는 구조조정에도 적극 참여해 달라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의 큰 장이 섰지만 PEF 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2013년 한진해운의 벌크전용선 사업부문을 인수한 PEF 한앤컴퍼니가 현대상선의 벌크전용선 사업부문 인수를 추진하는 것이 고작이다. 올해 3월 임종룡 금융위원장까지 나서 “PEF가 기업 및 산업 구조조정을 맡아 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아직 정부가 원하는 PEF가 없다”며 업계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구조조정 전문가들은 국내 PEF가 지나치게 보수적이어서 부실기업 투자에 몸을 사리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PEF 업계에서는 제도적 걸림돌을 하소연한다. 현행법이 산업 주기가 긴 중후장대 산업에 대한 투자를 막고 있기 때문에 법률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송인준 IMM PE 대표이사는 “조선업 등 경기민감 업종은 회사를 정상화시키고 이익을 창출하려면 20∼30년 장기 계획을 세워 투자해야 하는데, 자본시장법상 국내 PEF는 설립일로부터 15년 이내에 펀드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PEF는 투자 기간의 제약을 받지 않아 국내 PEF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위 관계자는 “관련법 개정을 추진 중이지만 정치권에서 PEF가 국가 기간산업을 영속 지배할 것이라는 반대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자산 규모 5조 원 이상 기업을 대기업으로 지정하는 공정거래법이 PEF의 투자를 소극적으로 만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미래에셋, 한국금융지주 등 PEF를 보유한 금융사들이 조 단위 자금을 투입해 부실기업을 인수하는 순간 삼성 같은 대기업 규제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주요 자금 출자자인 국민연금 등 주요 연기금과 공제회도 PEF의 부실기업 인수에 부정적인 편이다. 군인공제회 관계자는 “PEF의 자금 대부분이 국민들의 노후 자금이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수익이 확실한 투자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토종 PEF들이 할리스커피, 버거킹 등 빠르게 현금을 창출하는 외식업계 투자를 선호하는 것도 신속한 투자금 회수를 바라는 연기금 등의 요청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론스타 사태 이후 PEF의 국가 기간산업 인수에 부정적인 여론도 PEF의 구조조정 참여를 주저하게 만든다. 문용린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PEF가 기업을 인수하더라도 산업 정책, 노사 관계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며 “PEF의 구조조정 참여를 유도하는 정책적 지원은 물론이고 PEF 스스로도 구조조정 전문 인력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구조조정#사모펀드#p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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