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창업주, 강한 아들로 키운다며 ‘못난 놈’ 몰아붙이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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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테랑’ 속에서 배우 유아인이 연기한 재벌 3세 조태오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 요건을 다 갖췄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폭력을 일삼는 것은 기본이고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에게 직접 마약까지 투여하며 낙태를 종용하는 망종이다.

그러나 이런 극악무도한 인물에게도 동정심이 생기는 대목이 있으니, 바로 성장 과정이다. 그는 재벌가 출신이긴 하나 서자다. 아버지의 인정과 관심을 통해 얼마나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물려받느냐 하는 전쟁을 태어나면서부터 겪었다.

이는 재벌이 아니라도 자수성가한 기업가 가정에서 쉽게 목격이 된다. 큰 사업을 일으키거나 물려받은 재벌가 아버지들은 자식들을 강하게 키우려 한다. 그런데 아버지의 카리스마로 압도된 환경에서 자란 2세, 3세는 모든 경쟁에서 가장 기본적인 힘, 즉 자존감을 갖지 못한 경우가 많다. 자존감은 부모의 인정과 격려를 통해서 생성이 된다.

실제 기업 코칭 과정에서 아들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 비난과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를 자주 접한다. 그러나 그렇게 키운 자식은 자존감이 낮아질 확률이 높다. 아들은 어린 시절부터 격려와 지지를 받지 못하고, 늘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자랐기에 자신이 귀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하게 된다.

또 아버지 관점에선 아이가 아이로 보이지 않고, 미래의 경영자로 보이기에 어린 시절에 당연히 나타나는 수많은 실수를 그냥 넘기지 않고 가혹하게 혼을 내곤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 같은 기분을 갖게 되고, 아버지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연기하는 미생으로 남게 될 수 있다.

자식에게 부모는 ‘세상’이다. 자식은 부모를 꺾고 나가야 세상을 꺾을 수 있다. 부모가 꺾을 수 없는 철옹성이면 그는 세상에 정면 승부를 할 수가 없게 된다. 부모를 떠나 독립된 개체로서의 첫발을 내딛기 위해선 부모에 대한 전면적 부정 과정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 만들어 간다. 이 과정이 이뤄지는 사춘기 반항 시기에 부모가 자식에게 져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기세를 몰아 세상과 맞설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부모가 져주지 않고 더 큰 힘으로 그 반항을 꺾어버린다면 인간은 부모에게 순응하는 것이 유일한 자기의 살길이라고 생각한다.

자존감과 더불어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중요한 심리적 요소는 자기 효능감이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취한 창업주들은 자식에게 이런 도전과 성취를 스스로 쟁취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줘야 한다. 그리고 실패와 패배를 맛볼 기회도 줘야 한다. 실패와 패배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극복하기 위해 전략을 짜고, 시행착오를 통해 더욱 강한 자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후계자들 입장에선 자존감을 키워주는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부모를 원망해봐야 소용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돌보는 것이고, 이를 위해 스스로의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을 수 있고,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이 나도 살고, 부모도 살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부모가 일군 사업에 피땀을 바치는 조직원들을 위한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선택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통과 의례다.

김현정 아주대 경영대학원 특임교수 hyun8980@gmail.com
정리=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창업주#후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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