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뷰스]우리에게 ‘잃어버릴 시간’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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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식 손해보험협회장
장남식 손해보험협회장
올 연말 한국경제의 핫이슈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후폭풍이다. 가계부채 급등, 부동산 거품 붕괴, 신흥국 위기로 인한 수출 부진 등 녹록지 않은 경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직면한 저성장, 고령화 등 구조적인 문제들은 1990년대부터 장기불황을 겪었던 일본과 매우 닮아 있다. 미국 금리 인상의 파고 속에서 이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금융권 안팎에서 들려온다.

지금은 ‘상궁지조(傷弓之鳥)’라는 고사성어를 곱씹어볼 때다. 전국시대 말엽 경리(更羸)라는 신궁이 위왕(魏王)에게 “화살 없이 활만으로 새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장담했다. 실제 그가 활시위를 당겼다 놓기만 했는데 기러기가 떨어졌다. 그러자 경리가 말했다. “떨어진 새는 무리에서 떨어져 천천히 날며 울음소리도 애처로웠습니다. 예전 화살에 맞았던 상처가 아프기 때문이고, 놀란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활시위 소리가 나자 놀라서 너무 높게 난 탓에 옛 상처가 터져 떨어진 겁니다.”

한국은 1997년에 외환위기라는 상처를 겪었다. 이번 위기와 당시 위기는 상황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지나치게 두려워한 나머지 활 소리만으로도 위축돼 죽음을 맞게 된 기러기가 돼선 안 된다. 경제체질을 시급히 개선하고 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등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시장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면 일본이 걸었던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길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손해보험업계도 대외변수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최근에는 선량한 피해자의 보험료 인상을 막기 위해 ‘경미사고 수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을 때 수리를 하지 않고 무조건 부품을 교체해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보험금이 과다 지급되면 보험료가 인상돼 가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보험업계는 보험사기로 누수되는 보험금을 줄이기 위한 법 제정에도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내년에는 더 큰 기회의 장도 열린다. 금융개혁의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이 좋은 예다. 상품 개발 및 가격에 관한 규제의 빗장을 풀어 보험사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경쟁을 촉진시킨 것이 골자다. 더 좋은 상품, 낮은 가격이라는 혜택은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나아가 보험산업의 위험관리 능력을 높이고 사회안전망 역할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잃어버린 20년’을 겪지 않기 위해, 괜히 위축돼 떨어지지 않기 위해 보험업계는 본격적으로 체질 개선을 시작했다. 보험업계가 리스크 예측과 선제적 대응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처럼 사회 모든 분야가 협업과 집단지성을 활용해 미래 예측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일본의 선례를 우리 현실에 대입해 국가 차원의 새로운 솔루션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공공부문과 민간이 협업의 강도를 높여가야 한다. 과감한 구조개혁과 경제 전 분야에 걸친 체질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전 업권이 발상의 전환과 규제 완화, 과감한 시도를 통해 다시 날아야 한다. 움츠러들 것인가, 움직일 것인가. 지금부터 준비하기에 달렸다. 우리에겐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이 있다. 더 고민하고 준비한다면 우리에게 ‘잃어버릴 시간’ 따위는 없을 것이다.

장남식 손해보험협회장
#경제#금융#금리#잃어버린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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