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의 시사讀說]저신뢰사회 본색 보여준 롯데 ‘형제의 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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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인류가 형제애를 강조한 것은 실상은 형제간 싸움이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형제간 싸움은 성경의 첫머리에 등장한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두 아들이 갈등을 빚어 가인이 아벨을 죽인다. 고대 로마의 건국 신화에서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 형제가 힘을 합해 나라를 세우지만 동생이 형을 죽이고 왕이 된다.

신화에는 실제 역사가 비친다. 중국 당 고조 이연의 아들 이세민은 형제를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다. 조선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도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된다. 왕자의 난이란 말은 이런 고사들에서 연유했다. 왕이 사라진 오늘날 그 싸움은 기업으로 옮아갔다.

나눌 수 없는 기업 권력

우리나라는 대기업에 가족기업이 많다. 정치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에 따르면 저신뢰사회일수록 가족기업이 번성한다. 선진국에도 중소기업은 가족기업이 많다. 그러나 대기업의 경우 가족기업이 남아 있더라도 가족은 경영에는 손을 떼고 소유만 하는 추세다. 소유와 경영을 모두 가족이 하는 재벌은 우리나라에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재벌은 ‘chaebol’로 영역돼 영어권에서 그대로 쓰일 정도다.

부모의 재산이 수억 원대만 돼도 부모가 돌아가실 때 형제간 싸움이 벌어지고 소송까지도 가는 게 인간사다. 부모의 재산이 수천억, 수조 원대 회사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 정도 액수라면 왕이 되기 위해 벌이는 왕자의 난과 별다를 바 없다. 그래도 단순히 재산이라면 나누면 된다. 그것도 균등하니 안 하니 하면서 싸움이 벌어지지만 일단 나눌 수 있으면 분쟁의 소지는 줄어든다. 그러나 경영권은 권력과 같아서 쉽게 나눌 수 없다.

저신뢰사회는 신뢰의 범위를 최소화하는 사회다. 단순히 가족끼리만 신뢰한다는 차원을 넘어 가족의 규모가 커지려고 할 때 그 일부를 쳐내는 것도 필연적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사회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기업이 자식대로 넘어오면 자식 간의 협의로 운영하기보다는 그중 하나가 독차지할 때만 편안함을 느끼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형제애는 어느 시기가 오면 반드시 파탄에 이른다. 그것이 재벌가 형제의 난이다.

가족에서 씨족이 나오고 씨족에서 부족이 나왔다. 그렇게 사회가 형성됐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랑을 뜻하는 단어가 여럿 있었는데 그중에서 형제애를 필리아(philia)라고 불러 가장 고귀하게 여겼다. 형제애를 확장하면 사회에서의 우정이고 더 확장하면 인류애다. 유교는 효제(孝悌)를 중시했다. 공자는 효제는 인을 행하는 근본(爲仁之本)이라고 했다. 여기서도 가족애를 확장하면 공동체의 윤리가 된다.

형제애도 파탄내는 재벌

형제애와 가족애에서 인류애가 나오듯이 가족에서 형성된 신뢰를 사회로 확장하는 것이 고신뢰사회다. 고신뢰사회에서는 가족기업이라도 대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자손이 참여해 결국 가족의 의미가 희박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때 혈연을 벗어난 협력의 더 넓은 길이 열린다.

재벌은 근대화에서 앞선 일본에서 먼저 등장했다. 일본어로 재벌을 의미하는 자이바쓰(zaibatsu)도 그대로 영어로 쓰인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일본에서 재벌은 거의 사라졌다. 오늘날 일본은 고신뢰사회에 속한다. 롯데그룹은 한일에 걸쳐 있고 형제의 난은 일본 쪽 롯데에서 터졌다. 고신뢰사회 한가운데서 저신뢰사회의 본색을 보여준 ‘골육상쟁’이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롯데그룹#형제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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