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땅이 그러하듯… 삶도 불순물이 있어야 굴러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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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퀴가 돌아가고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순물이, 불순물 중의 불순물이 필요하다. 잘 알고 있듯이, 땅도 무엇을 키워내려면 그래야 한다. 불일치, 다양성, 소금과 겨자가 있어야 한다. ―‘주기율표’(프리모 레비·돌베개·2007년) 》

6년 전 나는 저스틴을 스웨덴 스톡홀름대 기숙사에서 만났다. 프랑스 파리에서 온 저스틴은 항상 사과나 당근 한 쪽을 입에 문 채 나와 등교 버스를 타곤 했다.

저스틴은 빙하학(Glaciology)을 전공했다. 그 애가 말하기 전까진 그런 학문이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이름이었다. “여기엔 석사과정이 있더라고. 스웨덴 노르웨이 북쪽은 얼음이 많으니까”라고 그는 말했다.

저스틴은 파리 소르본대 경제학과에서도 수·차석을 오르내리던 우수생이었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저스틴이 석박사 유학 코스를 밟고 소르본대 주류 학파 교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그는 학사과정 내내 허무감을 떨칠 수 없었다. 졸업을 바로 앞둔 마지막 강의실에서 저스틴은 노교수에게 그동안 묵혀뒀던 질문을 던졌다. “완전경쟁 모델, 완벽한 시장경제 같은 것들은 세상에 없는데 모든 걸 그렇게 가정하고 시작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죠?” 순간 강의실은 조용해졌다. “수강생들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고, 교수는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저스틴은 말했다.

그래서 빙하학을 공부하러 북유럽까지 온 것이었다. 박사과정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건 영상통화에서 그는 담요를 둘둘 만 채 북극 기지에서 웃고 있었다. 명문대 졸업장을 버리고 ‘얼음이나 깨고’ 있지만 저스틴은 후회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당연한 것에 대한 의문을 두려워한다. 평화로운 삶에 균열을 내고 불순물을 섞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작가 프리모 레비가 끊임없이 되뇐 것처럼, 그게 소금이든 불순물이든, 결국은 이러한 문제 제기가 누군가를 진짜로 살아있게 하고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것이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책#땅#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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