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호전실업, 혁신과 인내로 30년 무한도전, 의류 名家 탄생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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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아웃도어 OEM 업체서 이젠 SPA까지
호전실업 성공신화, 중소기업에 영감 줘

위쪽부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장 내부 전경과 공장 전경. 호전실업 제공
위쪽부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장 내부 전경과 공장 전경. 호전실업 제공
혁신. 상황이 어려울수록 많이 이야기된다. 위기를 돌파하는 최고의 무기는 혁신이다. 요즘은 그냥 새로워지는 정도를 넘어서 시장 파괴적 혁신을 이야기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수준의 혁신이며, 누구나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상식의 영역을 파괴하는 혁신이다.

기업뿐 아니라 최고경영자에게도 그것이 요구되는 시대다. 위기를 이기는 가장 빠르고 간단한 방법이 ‘CEO 리더십의 혁신’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 늘 깨인 생각으로 본인의 삶과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 ‘혁신 CEO’들이 주목받는 이유다.

박용철 호전실업㈜ 회장은 특별하다. 의류 분야에서 ‘혁신 CEO’로 통하는 인물이다. 나이키, 아디다스, 노스페이스 등 잘 알려진 글로벌 빅 브랜드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로 이름을 떨쳤고, 이후 스포츠·아웃도어 분야로 보폭을 넓히기까지 말 그대로 혁신으로 히트를 쳤다.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진정한 경영자가 아니었다면 나오기 힘든 결과다. 그는 최근 제조·유통 일괄(SPA)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한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그리고 72세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혁신 드라이브를 이어가고 있다.

나이키·노스페이스에 납품… 5년간 70% 매출 성장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서울 마포의 호전실업㈜ 본사 집무실. 박 회장은 “기업을 하는 것은 인내와 도전의 연속”이라고 말문을 연다. 새로 준비하는 SPA사업에 대해 ‘글로벌 SPA 브랜드와의 경쟁은 버겁다’는 일각의 불편한 시선에 대해 “그게 나와 회사가 헤쳐 나가야 할 현실이며 도전 과제”라고 자신감 넘치는 표현을 한다.

깔끔하게 정돈된 책상과 가지런한 책장은 주인의 군더더기 없는 성격을 짐작게 한다. 꼭 필요한 것만 있어 보이는 집무실 곳곳에는 검소와 근면으로 살아온 오랜 연륜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그는 호전실업㈜을 이끌어나갈 마스터플랜을 세운다.

지난 30년 동안 의류만 고집했던 회사가 호전실업㈜이다. 1985년 설립돼 지금까지 의류 OEM 수출 회사로 입지를 다졌다. 그리고 이제 글로벌 기업으로 뛸 준비를 하고 있다.

창립 당시 박 회장과 단 두 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호전실업㈜은 지금 국내를 넘어서 인도네시아에만 공장 5개를 가동할 정도로 성장했다. 또한 자체적으로 심 실링, 웰딩, 본딩 등의 아웃도어·스포츠 의류제조 전용 장비를 보유해 경쟁력을 높였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노스페이스, 언더아머, GAP 등 쟁쟁한 발주처들의 호전실업㈜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다.

지난해 회사의 매출은 2500억 원을 기록했으며, 장기 불황에 따른 저성장 기조 속에서도 최근 5년간 70%의 눈부신 매출 성장을 이끌어냈다. 지난 3년간(2010∼2012년) 영업 이익률은 각각 3.26%, 5.73%, 6.57%로 연간 10∼20%의 성장세를 보였다. 박 회장이 맨주먹으로 일궈낸 성과다.

印尼서 성공신화…‘인내’로 위기 뚫고 재도약

호전실업㈜은 해외 진출의 성공사례로 줄곧 회자되고 있다. 1991년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까웰(Kawell)’과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여성 정장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캐주얼 의류로 품목을 늘렸다. 인도네시아는 의류 생산에서 어려운 점이 많았다. 우선 공장과 관련된 인프라와 자재가 부족했고 현지의 낮은 교육 수준, 한국인들과 다른 국민성은 품질 개선에 큰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직원들에 대한 꾸준한 지도와 교육, 그리고 엄격한 기준의 연구개발을 통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품질을 실현할 수 있었다. 결국 호전실업㈜은 카웰 지분 100%를 인수하며 현지화에 성공했다. 숱한 위기와 고난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오뚝이처럼 쓰러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를 비롯해 버카시 등 5개 공장(148라인)에서는 한국인 직원 120여 명과 1만5000여 명의 현지 근로자가 근무하고 있다. 내년에는 생산기지 한 곳을 더 늘릴 계획이다. 사실 호전실업㈜은 인도네시아 진출 이전에 이미 일본과 거래를 성사시킨 바 있었다. 일본은 한국에 과거 존재했던 쿼터제도 없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사업에 유리한 지역이었다. 대전에 공장과 물류센터를 세우고 까다로운 일본시장에 안착했으나 위기는 곧바로 찾아왔다.

일본 업체가 별다른 통보도 없이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겼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그때 ‘인내’를 배웠다고 했다. 지금도 ‘인내가 곧 성공의 씨앗’이라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기차가 긴 터널을 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한 줄기 빛이 있는 출구까지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박 회장이 당시 직원들을 독려하며 수도 없이 반복한 말이다.

이탈리안 정통 아웃도어 브랜드인 ‘페리노(Ferrino)’의 제품사진. 호전실업 제공
이탈리안 정통 아웃도어 브랜드인 ‘페리노(Ferrino)’의 제품사진. 호전실업 제공
‘페리노’ ‘얼바인’으로 틈새 개척… SPA 도전장

현재 호전실업㈜은 스포츠·아웃도어뿐만 아니라 스키·스노보드·사이클·모터사이클 의류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어 144년 역사의 이탈리안 정통 아웃도어 브랜드인 ‘페리노(Ferrino)’의 라이선스를 획득해 국내에 선보였으며, 자전거 인구의 폭발적인 성장을 예견하고 ‘얼바인(Ulvine)’이라는 사이클 의류 브랜드를 론칭했다.

페리노와 얼바인은 2012년에 설립된 자회사 호전리테일㈜(대표이사 박진호)에서 총괄하고 있지만, 최초의 아이디어는 모두 박 회장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사업수완이 발휘된 것이다.

최근에는 단순한 OEM 의류제조 분야를 넘어 국내에서 진정한 SPA 유통업체로 성장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SPA는 의류 상품 기획부터 디자인·생산·유통·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일괄 처리하는 패션업체를 말한다. 제조부터 유통까지 올인원 토털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놓은 만큼 시장 진입은 수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호전실업㈜은 ‘기업은 반드시 영속되어야만 한다’는 박 회장의 경영신조와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다져나갈 각오로 2016년 하반기에는 코스피 상장 계획을 가지고 있다.

꿈을 머리로만 꾸는 사람과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많은 차이를 보인다. 박 회장은 기술력과 아이디어, 그리고 실행력만 있다면 도전할 시장은 무한하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경영인이다.

최윤호 기자 uk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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