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차달봉’이 취업 사다리 타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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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임숙 경제부 차장
하임숙 경제부 차장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의 주인공 차달봉은 26세 청년실업자다. 오랜 백수생활 끝에 친한 선배가 소개해준 회사에 취직했다며 좋아하던 그는 출근 첫날 다단계업체 취업사기에 당했다는 걸 알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레스토랑의 주방보조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는 이제 실업자일까, 아닐까.

한국의 공식 실업률로 보면 그는 실업자가 아니다. 통계청에서 실업자로 치는 사람은 최근 4주간 구직활동을 하며 즉시 일할 수 있지만 1주일간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나온 공식 실업률은 3.2%다. 하지만 그는 누가 봐도 청년실업자다. 주방보조 일은 번듯한 직업을 갖기 전 임시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통계청이 이 같은 불합리한 통계를 보완하기 위해 고용보조지표를 발표했다. 청년 차달봉이나 경력단절 여성 같은 숨은 실업자를 포함해 계산해보니 ‘사실상 실업률’은 10.1%까지 치솟았다.

차달봉이 번듯한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건 개인의 손실로만 끝나지 않는다. 새내기는 회사 체제 속에서 경험자로부터 배우고 시스템으로부터 습득한다. 경험이 쌓이면서 선배가 되고 관리자가 되며 나중엔 임원이 된다. 사다리를 밟아 올라가는 동안 스스로 시스템에 기여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에 편입되지 못한 청년들이 중견 세대가 된다면 사회 전체의 시스템이 약해질 수 있다.

우리 주변에 시스템에 편입되지 못한 청년들은 참 많다. 건설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다니던 작은 설계회사가 부도나자 중고교 시절 자신을 키워준 이모의 생일잔치에 참석하지 못하는 30대 친척 동생. 미혼이라 장가는 보낼 수 있을지 그 어머니 걱정이 태산이다.

1년에 두 번, 3년째 같은 회사에 지원하다 안면이 트인 면접관으로부터 “그 학벌에 왜 취직이 안 되냐”라는 억장 무너지는 핀잔을 들은 대학 후배. “아무리 여러 곳에 내봐도 안 붙여주는 걸 어떡하느냐”라는 하소연을 그 자리에선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실제 이런 청년들이 나중에라도 회사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 중견 증권사 대표는 소위 ‘스펙’도 괜찮고 면접 때 인상도 좋아 “3, 4년간 아르바이트만 했다”는 지원자를 붙여줬다가 나중에 후회했다고 했다. 책임감이 부족한 데다 고(高)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진짜 일’ 대신 ‘시급제 스타일’로만 일해 골치가 아팠다는 얘기였다. 이 대표는 “한번 사다리에 올라타지 못하면 경험이 쌓이지 않고, 그 사람이 40대가 되면 사회 하류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진다. 사다리에 오르지 못하는 젊은이가 많아 걱정”이라고 혀를 찼다.

그동안 정부는 ‘한국의 실업률이 해외에 비해 그리 높지 않다’며 현실을 애써 외면해왔다. 이제라도 숨은 실업률을 찾아낸 건 잘한 일이다. 현실을 제대로 파악해야 해결책도 나오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서 한발 나아가야 한다. 현실의 차달봉들이 사다리에 올라탈 정책이 절실하다.

하임숙 경제부 차장 artemes@donga.com
#취업#청년 실업자#실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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