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생각의 힘은 제도의 힘보다 훨씬 깊고 오래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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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없는 윤달을 우리나라에서는 귀신도 쉬는 달이라고 보아 결혼이나 이사, 수의 만들기, 이장, 불공 등 긍정적인 풍속들로 이어 온 반면, 중국에서는 이를 정상적인 달이 아니라고 부정적으로 보아 하던 일도 멈추었다. ―‘알고 보면 재미있는 우리 민속의 유래’ (박호순 지음·비엠케이·2014년) 》

내 집필실 근처의 어느 학교 선생들은 아침에 잘 들어왔던 짧은 일방통행로를 퇴근 때 역주행해서 쏙 빠져나간다. 얌체 짓이다. 하루는 어느 얌체 선생이 역주행 중이던 자기 차를 멈추더니 길가에서 심하게 장난치던 자기 학교 아이들을 훈계하는 모습까지 보았다. “헐”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말했건만 이 선생은 왜 아직껏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서 며칠씩이나 그 웃픈(웃기면서 슬픈) 장면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사는 대로 생각한다면 자신처럼 편한 대로 처신하는 그 아이들의 길거리 놀이에 대해서도 관대했어야 당연한 것 아닌가.

폴 발레리의 저 말은 사실 “용기를 내어 생각하는 대로 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경구이다. 생각하는 대로 사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으니 올바른 사고능력을 가진 자기결정권자로 살려면 용기를 내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하지만 그 본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 말은 내게 생각의 힘을 되새김질하는 실마리가 되곤 한다. 사실 그 얌체 선생님이 자신의 얌체 짓처럼 생각하게 돼 제도에 그다지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가 됐으면 좋겠다. 아이들도 그런 선생님과 함께라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혹자는 내가 순진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무조건 지켜야 하는 걸로 믿는 우리의 전통이란 것도 우리의 행동대로 만들어져 왔다. 같은 역법에 따라 계산해낸 같은 윤달도 바다 건너 땅과 한국에서의 쓰임새가 판이하게 다르지 않은가. 생각의 힘, 행동의 힘은 제도의 힘, 질서의 힘보다 덜 가지런할지언정 훨씬 깊고 분방하며 오래간다.

박유안 번역가
#생각#제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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