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미스터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28일 대형마트를 찾은 주부 한모 씨(36)는 채소를 사려다 깜짝 놀랐다. 상추 150g의 가격이 3500원으로 지난달에 비해 2배 가까이 올랐기 때문이다. 깻잎과 풋고추 가격 역시 지난달에 비해 크게 올랐다.

한 씨는 “모처럼 가족들이 모여 삼겹살 파티를 하려고 했는데 채소 가격이 너무 올랐다”며 “물가 상승률이 낮다는데 장보러 나오면 딴 세상 얘기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개월째 1%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물가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장기간 이어진 장마로 채소 값이 급등하고 있는 데다 그동안 묶여 있었던 공공요금까지 오르면서 이례적인 저(低)물가 행진에도 서민들의 물가고(苦)는 가중되는 ‘물가 미스터리’가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3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대인플레이션율은 6월 2.8%로 소비자물가 상승률(1.0%)보다 1.8%포인트 높았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물가가 지표물가의 2.8배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체감물가와 지표물가 상승률의 괴리가 확대된 것은 지난해 초 3%대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해 11월부터 줄곧 1%대를 기록할 정도로 크게 낮아진 반면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줄곧 3% 안팎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대인플레이션은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예상하는 미래의 물가 수준이다. 기대인플레이션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피부로 느끼는 물가 수준이 높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체감물가는 17개월 연속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비해 1%포인트 이상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2002년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최장 기간이다.

낮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에도 체감물가가 여전히 높은 것은 소비자들이 매일 구입하는 품목들의 가격이 크게 오른 영향이 크다는 것이 한은의 설명이다. 실제로 한은이 이날 내놓은 물가보고서에 따르면 농축수산물과 석유류 가격은 최근 2년간 각각 5.1%와 6.2% 상승해 같은 기간 평균 물가상승률(2.7%)의 2배 수준을 보였다. 또 전기 가스 수도 등 일부 공공요금(5.0%), 전셋값(3.8%) 상승률 역시 평균 물가상승률보다 높았다.

한은 관계자는 “농축수산물 등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집계하는 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지만 소비자들이 일상생활에서 매일 사는 품목이어서 체감물가에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정부의 무상보육 확대 등 복지정책도 체감물가와 지표물가의 괴리가 확대된 원인으로 꼽힌다. 3월부터 보육료 지원 대상이 0∼5세로 확대되는 등 정부의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정책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3%포인트가량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보육료나 급식료는 잦아야 한 달에 한 차례 내던 요금이다 보니 피부로 느끼는 체감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것이다.

문제는 체감물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지표물가까지 함께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물가고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피부로 느끼는 체감물가가 높으면 임금인상 폭이 커지고 이는 다시 서비스나 상품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운 한은 조사국장은 “최근 일부 품목의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높은 기대인플레이션은 물가를 더 빠르게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물가#체감물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