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상생펀드 1000억 조성”… 사용처는 어물쩍 넘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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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성 개선안 발표 ‘속빈 강정’

최근 인터넷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몰려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네이버가 29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상생(相生)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구체적 실행계획이 없는 설익은 대책들만 나열해 ‘불 끄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은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상생·공정·글로벌 선도’를 주제로 △상생협의체 구성 △표준계약서 도입 △1000억 원 규모의 창업지원 및 문화 콘텐츠 펀드 조성 △검색 공정성 강화 등 네이버 개선 방향을 발표했다. 발표를 맡은 김상헌 NHN 대표는 네이버에 대한 최근의 비판과 관련해 “그동안 간과하거나 겸허히 수용해야 할 부분이 없는지 고민했다”며 “오늘 간담회는 그 고민의 결과”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인터넷 관련 업계는 “대부분의 대책이 구체성 없는 ‘선언’ 수준이다. 기대에 훨씬 못 미친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 1000억 펀드 조성…사용계획은 깜깜

네이버가 발표한 상생 대책 중 그나마 가시적인 것은 1000억 원 규모의 펀드 조성이다. 김 대표는 “인터넷 벤처 창업 활성화를 위해 500억 원 규모의 벤처 창업지원 펀드를 만들고 500억 원 규모의 문화 콘텐츠 펀드도 조성해 총 1000억 원 규모의 상생 펀드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펀드를 언제 조성해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김 대표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가진 벤처를 키우고 이런 기업을 적극적으로 인수합병(M&A)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라면서도 “자세한 내용은 구체화되는 대로 다시 말하겠다”고 했다.

NHN이 펀드의 사용처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M&A 등에 활용하겠다고 하자 일각에서는 “사실상 원래 써야 했던 돈을 ‘상생 펀드’라고 포장만 바꾼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중소 인터넷업체의 한 관계자는 “일단 겉보기엔 좋아 보여도 속이 어떨지는 펀드 운용행태를 봐야 알 것”이라며 “정부와 정치권을 돈으로 달래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 NHN이 펀드를 조성해 지원하겠다고 밝힌 벤처와 콘텐츠 영역은 인터넷 정책을 주관하는 미래창조과학부가 가장 역점을 두는 분야다. NHN은 이미 이달 초에도 미래부가 주도적으로 조직한 ‘인터넷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얼라이언스’에 참여해 향후 5년간 100억 원을 지원하기로 한 바 있다. 문제는 이 얼라이언스 사업을 주도한 미래부 해당 조직이 네이버 검색 규제안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 ‘이래서야 미래부가 네이버를 제대로 관리 감독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대책은 많은데…업계 “뭐가 바뀌는 건지”

NHN은 이날 네이버 서비스 상생협의체 구성, 벤처기업 상생협의체(가칭) 조직, 서비스 영향 평가제도 도입, 검색광고 표시 개선, 음란물 등 유해정보 적극 차단 등의 상생 대책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역시 구체적 계획이 빠진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NHN은 “일단 소통 채널과 기회를 다양화하고 업계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데 이번 대책의 방점이 있다”며 “아직 구체적 내용은 없지만 이번엔 결코 흐지부지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는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병승 컴닥터119 대표는 “정부와 정치권이 규제 움직임을 보이니 시간을 끌려고 내놓은 대책 같다”며 “실행계획 없는 대책 발표는 진정성 없는 임기응변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실제 NHN은 2010년에도 포털과 중소 인터넷업체 간 상생을 위한 ‘인터넷 상생 협의체’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조직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이정민 웃긴대학재단 대표는 “업계 자율에 맡기다 보니 대화가 많지 않았다”며 “감옥에 죄수를 모아놓고 간수가 자율로 하라니 결국 힘센 사람이 대장이 되는 꼴이었다”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상생펀드#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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