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총재 “그림자 금융 규제할 국제규범 내년쯤 나올듯”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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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은행 CEO 회동서 밝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들은 파산 직전까지 관련 손실 규모가 얼마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이 투자은행들은 자회사를 만들어 저금리 단기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 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이나 각종 고위험-고수익 파생상품에 투자했다. 투자은행들의 부실이 현실화되면서 머니마켓펀드(MMF)의 ‘펀드런(대량환매)’ 사태가 벌어지며 미국발 금융위기는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됐다.

비은행 금융기관이나 금융상품을 총칭하는 그림자 금융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위협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글로벌 금융감독 당국은 그림자 금융에 대한 규제 방안을 두고 고심해왔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사진)는 16일 ‘비은행 금융기관 최고경영자(CEO) 협의회’에 참석해 “내년쯤 증권대여, 환매조건부채권(RP) 매매 등 그림자 금융에 대한 국제적인 규제방안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그림자 금융 규제 권고안 마련을 산하 금융안정위원회(FSB)에 위임한 데 따른 것이다. FSB에서 내놓을 권고안은 각국이 그림자 금융 관련 규제를 만들 때 가이드라인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림자 금융은 은행처럼 자금 대출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금융당국의 엄격한 건전성 규제를 받지 않는 금융기관과 금융상품을 말한다. ‘그림자’라는 말은 금융의 본래 모습과 비슷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FSB에 따르면 전 세계 그림자 금융 규모는 2002년 이후 10년 동안 41조 달러 급증해 2011년 말 현재 67조 달러에 이른다.

그림자 금융은 순기능도 갖고 있다. 보수적인 은행들은 위험이 높은 곳에는 자금 공급을 기피한다.

이 같은 순기능에도 그림자 금융이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거론되는 이유는 그림자 금융이 고수익-고위험을 좇는 만큼 한 번 부실이 터지면 연쇄적으로 부실 규모가 커지면서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출자-은행’ 2단계로 이어지는 은행과 달리 그림자 금융은 자금 중개 경로가 ‘투자자-자산운용사-기업어음(CP)-기업’ 등 여러 단계를 거친다. 예금자보호도 받지 못해 위기가 발생할 경우 대규모 자금 인출 가능성이 높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진정된 뒤 잠시 잊혀진 듯했던 그림자 금융이 중국의 신용 거품에 대한 우려로 또다시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의 그림자 금융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 초기 단계다. 한은이 FSB 기준에 따라 추산한 한국의 그림자 금융 규모는 2011년 말 현재 1268조 원이다. 은행 등 예금취급기관(2485조 원)의 51.0%에 상당하는 규모다. 금융당국 고위 당국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림자 금융의 규모는 한은 산출보다 적은 대략 400조∼500조 원”이라면서 “한국은 그림자 금융에 대한 감독 수준이 외국에 비해 훨씬 세다”고 말했다. 다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의 경우 그림자 금융에 대한 선호도가 크게 낮아졌는데 국내에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잠재 리스크로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림자 금융에 대한 국제규범이 도입된다는 데 대해 금융업계의 반응은 다소 엇갈린다. 또 다른 규제가 도입되면 가뜩이나 위축된 금융업이 더 침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국제금융실장은 “증권사들은 자금의 상당 부분을 환매조건부채권(RP)을 통해 조달하는데 만약 이를 규제한다면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수익을 위해서 위험하게 운용했던 금융회사를 규제하자는 취지인데, 한국은 금융회사들이 자금을 확보하기는 했지만 적절한 운용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그림자 금융(섀도 뱅킹) ::

은행과 유사한 자금 대출 기능을 가진 증권사, 여신금융사, 채권보증회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이 머니마켓펀드(MMF), 헤지펀드, 환매조건부 채권(RP) 매매 등 금융상품을 통해 시중에 자금을 공급하는 행위를 말한다. 은행에 비해 금융당국의 규제를 덜 받는다.

홍수영·손효림·이상훈 기자 gaea@donga.com
#김중수 총재#그림자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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