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애플에 ‘카피캣’ 반격… 특허소송戰 유리한 고지 확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 美ITC “애플 스마트폰, 삼성전자 특허 침해했다” 최종판정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판정으로 애플과의 특허소송에서 완패해 ‘카피캣(copycat·모방꾼)’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던 삼성전자가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잡았다.

ITC가 내린 애플 제품의 수입 금지 명령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확정되면 애플은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된다. 삼성전자를 모방꾼으로 몰며 자사가 창조의 아이콘임을 강조했던 애플은 이미지 실추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인 특허소송에서도 삼성전자가 유리한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수세에 몰렸던 삼성전자와 이번에 일격을 당한 애플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 특허 침해에 대한 판단 왜 달랐나

이번 판정은 애플의 손을 들어준 미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연방북부지방법원의 3월 판결과 배치된다. 당시 법원은 애플이 자사의 통신특허를 침해했다는 삼성전자의 주장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ITC는 삼성전자가 제기한 4건의 특허 침해 주장 가운데 하나인 ‘348 특허’의 침해 사실을 인정했다. 이는 데이터 전송 오류를 없애는 기술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6월 네덜란드 법원도 같은 특허에 대해 침해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국제소송 전문가들은 이처럼 판단이 다른 이유로 비(非)전문가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유·무죄를 따지는 일반 미국 법원과 달리 ITC는 특허 전문가인 행정판사와 위원들의 심사를 거치기 때문에 좀 더 전문적인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통신표준에 해당되는 기술이기 때문에 판매 금지 등의 권리를 주장해선 안 된다는 애플 측의 이른바 ‘프랜드(FRAND) 조항’도 판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창훈 특허법인 아주양헌 변호사는 “ITC의 이번 판정은 향후 다른 표준특허 기술의 권리 보호에도 민감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특허를 보호하는 쪽으로 기운 것 같다”며 “ITC의 판정은 곧바로 수입 금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파장이 크다”고 설명했다.

○ ITC 판정이 두 회사에 미칠 영향은?

‘아이폰4’ 등 수입 금지 대상 제품이 이미 구형 모델이기 때문에 애플의 경제적 타격이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컨슈머인텔리전스리서치파트너스에 따르면 3월 현재 전 세계 아이폰 판매량 가운데 아이폰4가 차지하는 비중은 14%다.

아이폰4 이후의 새 모델은 특허 침해에 해당되지 않는다. 예컨대 인텔 칩을 사용하는 아이폰4와 달리 퀄컴의 칩을 쓰는 ‘아이폰4S’는 퀄컴이 삼성전자에 특허료를 미리 냈기 때문에 애플이 별도로 특허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다. 애플의 주력 제품인 ‘아이폰5’ 역시 퀄컴 칩을 사용하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추가로 수입 금지 신청을 한다 해도 침해 판정을 이끌어 내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ITC의 판정은 다른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애플의 부담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법원에 별도의 특허 침해 소송을 내 애플이 아이폰4 등의 제품으로 얻은 이익에 대해 손해배상 판결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애플이 삼성전자와의 협상 테이블에 나올 계기가 마련됐다는 예상이 나온다. 하지만 애플이 즉각 연방항소법원에 항고하겠다고 밝히는 등 애플이 당장은 협상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삼성전자로서도 협상에 나설 여건이 무르익었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정이 삼성전자가 애플의 안방인 미국에서 거둔 첫 승리라는 점과 함께 무선통신 표준특허를 인정받았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법원에서 완패한 성적표만 들고 있던 지금까지와 달리 협상에서 유리하게 활용할 카드를 확보했기 때문에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해석이다.

○ 오바마 60일 내에 승인-거부 선택해야

오바마 대통령의 선택도 관심사다. 그는 60일 내에 ITC의 판정을 재가하든지, 거부권을 행사하든지 해야 한다.

거부권을 행사하면 자국 기업을 노골적으로 편드는 보호무역주의라는 국제적 비난을 촉발할 수 있어 부담스러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미 의회 의원들의 보수적 행태를 들어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달 24일 미 상원 사법위원회 소속 마이크 리 상원의원(공화당·유타 주) 등 양당 상하원 의원들은 어빙 윌리엄슨 ITC 위원장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표준특허가 문제가 된 사건에서는 공익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용석 기자·뉴욕=박현진 특파원 nex@donga.com
#삼성#애플#카피캣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