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Up]마지막 한방울까지… “無에서 油 짜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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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사들 ‘원유 찌꺼기’ 아스팔트 세일즈 전쟁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운오리새끼 신세였는데 이제는 백조처럼 날아올랐죠.”

SK에너지 정육남 아스팔트 기획관리팀장은 정유회사에서 아스팔트라는 상품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3일 이렇게 설명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아스팔트는 1970, 80년대에 이미 백조였다. 그러다 ‘찬밥신세’로 떨어졌고, 최근 다시 이 회사의 효자 상품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 곡절 많은 아스팔트사(史)

아스팔트는 원유 정제의 최종 단계에서 생성되는 찌꺼기다. 연료로서는 활용 가치가 없으며 생산량의 95%가 도로 포장용으로 쓰인다. 국내에서 도로 공사가 많았던 1970, 1980년대에는 이런 부산물인 아스팔트를 내수 시장에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었다. 그러다 국내에서 대형 토목공사가 점점 줄어들자 아스팔트는 서서히 정유회사들의 골칫거리가 되기 시작했다.

국제유가가 한창 치솟던 2008년 6월 당시에는 배럴당 휘발유 가격은 141달러, 경유 가격은 170달러였는데 아스팔트는 그 반값도 되지 않는 65.35달러에 불과했다. 당시 정유회사 직원 중에는 아예 아스팔트를 “똥”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최근 수년 동안 국내 정유회사들이 투자한 고도화시설은 원유에서 추출되는 아스팔트 생산량을 줄이고 고부가가치 상품인 휘발유와 경유를 더 많이 뽑아낼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그러나 아무리 고도화시설이라 해도 아스팔트 생산을 ‘0’으로 만들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역발상으로 아스팔트의 가치를 높인 곳이 SK에너지다. 이 회사는 아스팔트를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바꿔서 가까운 중국으로 팔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1990년대 후반에 아스팔트 사업 부서를 만들면서 기획관리팀, 국내영업팀, 해외영업팀을 뒀고 화합물을 첨가해 고품질 아스팔트를 개발한 뒤 이를 가까운 중국으로 수출했다. 때마침 중국은 대규모 토목공사 붐이 전국에서 일어나던 참이었다. 이 열기가 2000년대까지 이어졌다. SK에너지는 2010년 SK상하이아스팔트유한공사를 설립하고 중국에 8개 생산기지를 두는 등 현지화에도 힘써 2012년 말 기준으로 누적 수출량 1880만 t을 기록했다. 2010년에는 중국 아스팔트 시장에서 점유율 1위 자리에 올랐다.

○ 안정적인 매출 올려주는 아스팔트

휘발유, 경유와는 달리 수요가 꾸준한 덕에 저절로 포트폴리오가 분산되는 효과도 있었다. 올해 4월 기준으로 배럴당 휘발유 가격은 114달러, 경유는 116달러인데 아스팔트는 99.4달러다. 2008년 고유가 때와 비교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배럴당 30∼40달러 가까이 떨어졌는데 아스팔트 가격은 오히려 배럴당 30달러 이상 올랐다.

현재 SK에너지의 전체 생산량 중 아스팔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5%로 업계 평균(2.4%)의 두 배 수준이다. 1990년대 중반 아스팔트 수출을 시작한 에쓰오일은 2008년 이후 아스팔트의 생산량을 본격적으로 늘렸고 수출량도 급증했다. 에쓰오일의 아스팔트 수출량은 2008년 144만 배럴에서 지난해 292만 배럴로 증가했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는 고도화시설 투자에 집중해 휘발유와 등유 생산을 극대화하면서 어쩔 수 없이 생산되는 아스팔트는 내수 판매로 돌리고 있다.

SK에너지 등 정유회사들은 이제 동남아와 호주 등지의 아스팔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중국 아스팔트 시장 역시 서부 개발이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면서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기 때문이다.

SK에너지와 에쓰오일은 얼마 전부터 싱가포르, 베트남 등 토목공사 수요가 활발한 동남아 지역에 아스팔트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최근엔 SK에너지는 호주, 에쓰오일은 일본을 새로운 아스팔트 수출처로 눈여겨보고 있다. 호주의 경우 환경규제에 따라 낙후된 정유공장들을 폐쇄하고 있기 때문에 아스팔트 수입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내 정유회사들이 고도화시설에 공을 들이면서 아스팔트 생산량이 줄었다는 평가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중국 외의 지역은 고정된 바이어가 있는 게 아니라 아스팔트 수요가 있을 때마다 그때그때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식이어서 물밑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고 말했다.

:: 아스팔트 ::

원유 정제 과정에서 액화석유가스(LPG), 휘발유, 등유 등을 추출하고 남은 잔류물. 색은 검은색 또는 흑갈색을 띠며 접착성이 뛰어나 도로 포장용으로 주로 쓰인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정유업계#아스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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