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Up]재개발-재건축, 비상구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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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자니 수익성 안맞고, 그만두자니 그동안 쓴돈이 산더미
다 지었더니 이번엔 미분양 탓 추가분담금에 골머리… 한숨 소리 높은 사업현장 가보니…

“곧 넓은 새집에 입주하게 될 줄 알았는데….”

자영업자 김모 씨(48)의 한숨엔 최근 ‘입구’도 ‘출구’도 막혀버린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대한 고뇌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김 씨가 3억4000만 원을 들여 경기 부천시 원미구 약대동에 59m²(전용면적) 상당의 주공아파트를 매입한 건 2005년. 2008년부터 이주와 함께 재건축이 본격화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아파트와 토지 지분의 감정평가액을 감안하면 훗날 전용면적 122m² 아파트로 이사하더라도 추가 분담금은 4800만 원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나 김 씨의 ‘새집 마련’의 꿈은 나날이 흐려지고 있다. 3월로 아파트 완공은 코앞에 닥쳤지만 문제는 돈.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은 미분양 사태가 계속되자 손실액 2228억 원을 조합 측에 요구했다. 협상 끝에 청구액은 1368억 원으로 줄어들었으나 조합원들끼리 나누고 보니 김 씨의 추가 분담금은 1억7000만 원이나 됐다.

과거에는 투자 성공의 보증수표였던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부동산 침체 장기화에 따라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사업 추진부터 쉽지 않다. 미분양 가능성이 커지며 대형 건설사들조차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나서질 않기 때문이다. 겨우겨우 아파트를 짓더라도 이번엔 눈덩이처럼 불어난 추가 분담금 폭탄을 떠안아야 한다.

○ “입구도, 출구도 막혀버려”

지난달 31일 서울 강동구 고덕동 주공2단지엔 재건축 기대감보다는 긴장감만이 감돌았다. 고덕지구 가운데 가장 큰 규모와 입지를 자랑하지만 8개월째 시공사를 찾지 못하고 표류 중이기 때문. 고덕 주공2단지는 20만9306m² 터에 공사비 1조 원을 들여 지상 35층, 46개동의 아파트 총 4103채를 신축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건설사들이 너도나도 달려들 것이라 예측했지만 오산이었다. 2012년 7월 진행된 시공사 선정 입찰에서는 분양 책임을 시공사가 지고, 공사비도 신축 아파트로 대신 지급(대물변제)하는 조건을 내세워 입찰이 무산됐다. 2012년 말 진행된 재입찰에서는 분양 책임을 조합이 지고 미분양 발생 시 조합과 시공사가 협의해 해결하기로 조건을 변경했음에도 불구하고 건설사가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았다. 변우택 조합장은 “문턱을 낮춰 상반기 중 재입찰에 나설 것”이라며 “만에 하나 이번에도 입찰이 안 된다면 수의계약으로 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라리 이곳 상황은 낫다. 지난해 9월 조합을 해산하고 사업 중단을 선언했던 부천 춘의 1-1구역에는 ‘빚 폭탄’이 떨어졌다. 시공사인 대우건설과 GS건설이 조합 측에 그동안 빌려간 돈과 이자, 시공사 선정 총회비, 계약 해지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포함해 총 352억2000만 원을 돌려달라는 공문을 보낸 것. 그러자 재개발을 추진했던 주민들이 사업을 재개해야 한다며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에 ‘조합설립 인가 취소 결정을 물려 달라’고 청구했다. 건설사는 일단 현재 상황을 지켜보고 있지만 ‘사업을 지속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앞으로 지루한 소송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 곳도 상황이 편치는 않다. 김 씨의 사례에서 보듯 입주를 앞둔 아파트들에서조차 미분양분에 대한 책임을 둘러싸고 시공사와 조합원들 간의 갈등이 심하다. 약대동 주공 재건축 비상대책위원회 측은 “조합원들이 미분양분을 전부 책임질 수는 없다”라며 지분제(일반 분양에 대해 시공사가 책임지는 방식)에서 도급제(시공사는 분양에 대한 책임 없이 공사도급비만 가져가는 방식)로 사업 방식을 변경했던 과거 총회에 대해 무효 소송을 고민 중이다. 대규모 집회도 벌이고 있다.

○ “정부 차원의 대책 필요”

앞으로 뉴타운 출구전략이 본격화함에 따라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포기하는 지역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는 이에 대비해 이미 써버려 회수할 수 없는 비용(매몰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조합설립 이전에 중단된 뉴타운·재개발 사업의 추진위원회 사용비용을 최대 70%까지 지원하기로 한 것. 서울시의회는 올해 예산에서 39억 원을 매몰비용 지원비로 편성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지원만으론 재개발·재건축 시장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사업 진행 의지가 있는 곳에는 용적률 인센티브를 높이고 세제 혜택을 주라는 주장이다. 재건축, 재개발이 활성화되면 이주와 입주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택 거래가 발생할 수 있고 다른 지역으로 매매가 확산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원은 “노후주택은 늘어나는데 개발이익을 기대하고 자력으로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이끌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과거와 같이 큰 개발이익을 낼 수 있는 시기가 아니므로 풀어야 할 규제는 과감히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민소영 인턴기자 부산대 사회학과 4년  
#재개발#재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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