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주경야독… 취직후에도 스펙쌓기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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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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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한 사회가 낳은 신풍속

로펌에서 펀드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석모 씨(29)는 직장 3년차가 되던 해부터 국제금융 대학원에 진학해 업무와 학업을 병행했다. 하지만 수업 수준이 학부 때와 비교해 별로 높지 않았고 온라인 강의가 많아 인맥을 쌓기도 어려웠다. 그는 “결과적으로 새 직장 구하는 데도 별 도움이 안 돼 돈 주고 학위만 산 느낌”이라고 말했다.

자기계발을 위해 대학원에 다니는 젊은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뒤 다시 학교로 돌아가 낮에는 일, 밤에는 공부를 병행한다. 일각에선 미래가 불안한 사회가 낳은 또 다른 ‘스펙 쌓기’ 경쟁이란 지적이 나온다.

○ 신(新)주경야독 시대

전자회사에 다니는 임모 과장(37)은 경영전문대학원(MBA)에 3학기째 다니고 있다. 과장 진급 이후 커리어 관리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임 과장은 “퇴근 이후 여유시간이 없어 가족들에게 미안하지만 뒤처지지 않으려면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아일보가 잡코리아와 함께 잡코리아 홈페이지를 찾은 직장인 43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5명 중 1명꼴(22.4%)로 직장과 대학원을 병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대학원에 다니지 않는 직장인들도 64.1%가 ‘진학 계획이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대학원 병행을 택한 직장인들은 학비, 시간싸움, 부실한 커리큘럼이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가장 큰 부담은 학비다. 학위 취득까지의 예상 학비를 ‘2000만∼3000만 원’이라고 응답한 이들이 전체의 32%로 가장 많았다. ‘3000만 원 이상’이라는 응답도 10%였다. 직장인들의 선호도가 특히 높은 MBA의 등록금은 훨씬 비싸다. 패션회사 5년차 직장인으로 MBA 과정을 밟고 있는 서모 씨(30)는 “한 학기 등록금이 1000만 원에 육박해 통장 잔액이 마이너스”라며 “매년 승용차 한 대씩 날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일과 학업의 병행은 쉽지 않다. 교보생명 사회공헌팀에서 일하는 전지유 씨(30)는 8월 이화여대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전 씨는 “2년 동안 일주일에 서너 번 퇴근 직후인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수업을 빠짐없이 들었다”며 “과제가 많다고 회사 일을 소홀히 할 순 없으니 2배의 에너지가 필요했다”고 털어놓았다. 응답자의 60.2%가 직장생활과 대학원 병행이 ‘크게 힘들다’고 답했으며 이 중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비율도 20.4%에 달했다.

경제대학원에 다니는 직장인 김모 씨(31)는 토요일 수업에서 ‘농담 따먹기’만 하는 교수 때문에 황당했던 적이 많다. 그는 “힘들게 시간과 돈을 쪼개 갔는데 ‘대충 학위만 받아 가라’는 식의 수업이어서 회의가 생긴다”고 말했다.

○ 또 다른 스펙 쌓기 전쟁

이 같은 부담에도 직장인들의 대학원 진학은 계속 늘고 있다. 국내에는 직장인 재교육을 주로 담당하는 특수전문대학원이 일반대학원보다 훨씬 많다. 특수전문대학원은 996개로 일반대학원(182개)의 5.5배에 이르고 정원도 5000여 명 더 많다. 입학생 중 직장인 비중이 95%에 이르는 국내 야간 MBA의 올 상반기 평균 모집경쟁률은 3 대 1로 주간(1.5 대 1)의 2배였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대학원 진학 붐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황선길 잡코리아 헤드헌팅본부장은 “정년 단축, 고용불안 때문에 한 곳에서 느긋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라며 “경쟁에서 뒤처질까 두려워 ‘학력이라도 높여 놓자’고 나서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설문에 참여한 직장인들도 대학원 병행 이유로 자기계발(38.8%), 불안한 미래(24.5%), 이직 대비(18.4%) 등을 주로 꼽았다.

문제는 학위 취득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지 않으면 투자한 시간이나 비용만큼의 효과가 없다는 점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평생교육 활성화나 인맥 형성 측면에서 직장인들이 공부를 하려는 건 긍정적이지만 왜 굳이 시간, 돈, 노력을 들여 대학원에 진학하는지 고민해야 한다”며 “‘여유가 있을 때 학위나 따두자’는 생각으론 본인도 견디기 힘들 뿐 아니라 무의미한 ‘스펙 쌓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관계자는 “개설 및 운용 규정이 느슨해 교육의 질이나 신뢰도는 떨어지면서도 등록금은 비싼 특수대학원의 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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