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벤처창업 벽 높고 취업 문은 좁아져 자영업만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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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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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한국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는 징표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성공한 젊은 창업주들의 ‘도약 무대’인 코스닥 시장에서는 20, 30대 최고경영자(CEO)들이 급감하고 있다. CEO들의 평균 연령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젊은층이 선망하는 직장 중 하나인 금융회사들은 어려운 경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졸자 채용을 줄이고 있다. 경제 활력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 중 하나인 신설법인 수는 사상 최대치를 나타내고 있지만 은퇴 후 할 일이 없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들이 떠밀리다시피 ‘생계형 창업’에 나서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생계형 자영업 창업의 경우 경기 침체가 더 장기화하면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부실 뇌관’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많다. 》
▼ 아이디어로 승부 걸던 코스닥 2030 CEO ‘실종’
위기관리 약해… 10년새 12.6%서 3.6%로

코스닥 시장에서 30대 이하 젊은 CEO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이어지는 불경기의 영향으로 상당수 기업이 신규 채용을 줄이고 있다. 올해 7월 열린 한 채용박람회에 구직 희망자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동아일보DB
이어지는 불경기의 영향으로 상당수 기업이 신규 채용을 줄이고 있다. 올해 7월 열린 한 채용박람회에 구직 희망자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동아일보DB
19일 코스닥협회에 따르면 ‘2012 코스닥상장법인 경영인명록’에 등록된 30대 이하 CEO는 44명으로 지난해보다 11명 줄었다. 특히 20대는 2009년 1명, 2010년 1명 등으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 오다 올해 들어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이에 따라 2002년까지 전체 CEO의 12.6% 수준이던 30대 이하 CEO의 비율은 올해 3.6%로 크게 줄었다.

20, 30대 CEO가 줄어들면서 코스닥 시장의 고령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2002년 50세였던 코스닥 상장사 CEO의 평균 나이가 2010년 52.3세, 2011년 53.2세, 올해 53.4세로 높아진 것.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젊은 CEO들의 ‘데뷔 무대’라고 할 수 있는 벤처시장이 극도로 위축된 게 직격탄이 됐다고 설명한다. 벤처업계의 한 관계자는 “벤처 붐이 일던 2000년대 전후에는 아이디어 하나만으로도 100억∼200억 원을 쉽게 조달했다”면서 “이런 비정상적인 과열 상황도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벤처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꽉꽉 막힌 상태”라고 말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고부가가치형 일자리의 상당 부분을 신생 벤처기업이 만들어내고 있다. 1977∼2005년 미국의 일자리 통계를 보면 신생 기업은 설립 첫해에 연평균 3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반면 기존 기업에서는 연평균 100만 개씩 일자리가 사라졌다.

까다로워진 코스닥 상장 기준도 젊은 CEO들이 설 자리를 좁혔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회사 설립 후 코스닥 상장까지 걸리는 기간이 2003년 9년에서 올해에는 13.2년으로 약 4년이나 늦춰졌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종전에는 20대 중후반에 창업해 30대 초반에 코스닥 상장사 CEO가 되는 일이 많았다”며 “최근 부실기업의 코스닥 상장을 막기 위해 상장 조건을 까다롭게 바꾸면서 젊은 CEO가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위기관리 능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젊은 CEO들이 경기침체 장기화를 이기지 못한 것도 한 요인이다. 지난해 10월 평안물산으로 상호를 변경한 엔엔티는 싸이버텍, 싸이버텍홀딩스 등으로 회사 이름을 바꿔 가며 실적 회복의 의지를 불살랐지만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올해 5월 상장 폐지됐다. 이갑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시장이 글로벌화하며 국제 경기 등 국내 기업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다양해졌다”며 “경험이 부족한 젊은 CEO의 경우 경영 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백기를 드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은행-카드-보험사 등 금융권 하반기 채용 ‘뚝’
꽉닫은 지갑에… 카드사 20~30% 대폭 줄여

불황으로 금융권 실적이 악화되자 하반기(7∼12월) 금융권 취업문도 좁아지고 있다. 은행·카드·보험사의 채용 규모는 지난해보다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적의 영향을 덜 받는 금융 공기업의 취업 기회는 다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반기 시중은행의 채용 규모는 1000여 명으로 예상된다. 신한은행은 상반기(1∼6월) 신입행원 200명을 채용한 데 이어 하반기에도 비슷한 규모로 채용할 계획이다. 지난해 600명을 뽑은 것을 감안하면 올해 채용 규모가 33%가량 감소하는 셈이다. 우리은행도 상반기 200명에 이어 하반기 200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이 은행은 지난해 모두 555명을 채용했다. 올해 채용 규모는 지난해보다 약 28%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나은행과 IBK기업은행은 각각 지난해 수준인 100여 명, 200여 명을 채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KB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은 9월 말부터 100명 내외의 행원을 새로 뽑는다. NH농협은행도 10월경부터 150여 명을 모집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경기침체의 여파로 수익성이 나빠진 은행들이 채용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체감경기와 가장 밀접한 신용카드사들은 지난해 하반기보다 20∼30% 줄어든 400여 명을 뽑는다. 소비심리 위축과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등으로 수익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하반기 100여 명, 신한카드는 60여 명을 선발했지만 올해 하반기에는 채용을 덜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카드와 KB국민카드도 채용인력 증원이 힘든 상황이다.

보험사들도 저금리에 따른 역마진 등 수익성 악화로 하반기 채용이 지난해 수준인 1000여 명을 소폭 밑돌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대형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들이 하반기 대규모 신규 채용을 꺼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다만 금융권 공기업들은 채용을 확대한다. 지난해 51명을 신규 채용한 한국은행은 올해 신입행원을 60명가량으로 늘린다.

지난해 대졸사원 97명을 뽑았던 산업은행도 상반기 54명에 이어 하반기에 60명을 더 고용한다. 올해 상반기에 92명을 선발한 한국수출입은행은 하반기에도 49명을 채용한다. 지난해(58명)보다 두 배 이상으로 많은 수준이다. 이는 해외 자원개발과 관련한 인력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과 한국자산관리공사도 각각 지난해와 비슷한 50여 명, 30여 명을 뽑을 계획이다. 이미 25명을 선발한 한국투자공사도 하반기에 경력직 3명을 더 모집한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 자영업으로… 7월 신설법인 7127개 최대
“골목상권 불안”

생계형 창업이 늘면서 올해 7월 신설법인 수가 사상 최대치를 나타냈다.

한국은행이 19일 내놓은 ‘어음부도율 동향’에 따르면 신설법인은 6월 6744개에서 7월 7127개로 늘어났다. 2000년 1월 신설법인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다. 신설법인 수는 2011년 12월 이후 올해 6월까지 매달 6000개를 웃돌다 7월에 처음으로 7000개를 넘어섰다.

7월 부도업체는 95개로 6월(103개)보다 줄었다. 부도업체 수는 3월 90개에서 4∼6월에는 110개, 102개, 103개로 100개를 웃돌다가 7월에 다시 100개 아래로 내려왔다. 부도업체 수는 법인과 개인사업자를 합한 것이다.

이에 따라 7월 부도법인 수에 대한 신설법인 수의 배율은 109.6배나 됐다. 법인 1개가 사라질 때 법인 109개가 새로 생긴 셈이다.

신설법인 수가 사상 최대치를 나타낸 것은 은퇴한 뒤 재취업을 못한 베이비부머들이 대거 자영업 위주의 생계형 창업에 나선 데 따른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7월 자영업자 수는 전년 동월보다 19만6000명 증가했다. 이는 2002년 4월(22만 명) 이후 최대 수준이다. 특히 50대 취업자 증가폭이 전년 동월 대비 27만5000명으로 가장 많았고, 60세 이상도 25만1000명이었다.

창업 자체는 대개 경제의 활력을 보여주는 지표지만 최근 자영업 위주의 신설법인 증가는 오히려 한국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창업 3년차에 전체 자영업자의 53.6%가 퇴출된다. 또 서울시내 미용실 학원 치킨점 제과점 등 생활밀접형 자영업체는 km²당 5개 이상씩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생활밀접형 업종은 전체 창업의 35.1%를 차지한다.

김광석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자영업자의 가계부채는 평균 9000만 원으로 임금 근로자의 두 배 수준에 이르기 때문에 방치하면 한국 경제에 짐이 될 수 있다”며 “창업지원 정책보다 재취업 유도 정책으로 비(非)자발적 창업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불황#벤처창업#코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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