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때 직원 아꼈더니 年평균 15% 성장 큰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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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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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 호브 커터’ 국산화 DTR 전종윤 사장

DTR의 전종윤 사장이 자사의 주력 제품인 ‘기어 호브 커터’를 살펴보고 있다. 이 회사는 1988년 국내 최초로 이 기기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DTR 제공
DTR의 전종윤 사장이 자사의 주력 제품인 ‘기어 호브 커터’를 살펴보고 있다. 이 회사는 1988년 국내 최초로 이 기기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DTR 제공
자동차부품업체 DTR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위기이자 기회였다. 경기 침체로 주문이 40%나 줄었다. 1988년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기어 호브 커터’(기어를 깎아내는 데 필요한 절삭공구)’를 국산화한 뒤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승승장구하던 DTR로선 커다란 시련이었다.

그러나 이 회사는 단 한명의 인력도 감축하지 않았다. 17일 동아일보와 만난 전종윤 사장은 “‘기업이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만은 끝까지 아껴야 한다’는 부친(전용배 회장)의 뜻에 따랐다”며 “결국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매출이 연평균 15%씩 성장하기까지 직원들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이는 탄탄한 고용실적에서도 잘 드러난다. 2008년 위기 당시 160명이던 직원 수는 현재 200명으로 늘어났다. 중소기업으로선 이례적으로 25년 이상 장기근속 근로자가 40%에 이른다. 대부분의 우량 중소기업이 그렇듯 DTR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었다. 본래 이 회사는 기어를 깎는 장비가 아니라 기어 자체를 납품했다. 어느 날 주요 거래처였던 현대자동차로부터 기어 호브 커터를 국산화해 보라는 권유를 받고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국내 자동차업계는 해당 장비를 일본과 미국에 100% 의존하다보니 납품가격이 치솟는 것은 물론 제품이 불량이어도 제대로 항의조차 못하는 상황이었다. 단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공구 특성상 기술 장벽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도전장을 낸 이상 위험을 감수하고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게 전 회장의 판단이었다. 그는 엔지니어와 함께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가 제조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지만 오랫동안 공 들인 끝에 핵심 공정인 열처리 기술자를 스카우트하는 데 성공했다. 때론 눈치껏 공정기술을 익혀 복기하기도 했다. 이렇게 3년에 걸친 노력 끝에 1988년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문제는 판로(販路)였다. 신뢰성이 생명인 정밀공구 시장에서 자동차 제조사들이 낯선 한국기업 제품을 쓰려고 하질 않았다. 그때만 해도 자동차 공구에선 ‘메이드 인 저팬’이 기본으로 통하던 시절이다.

심지어 일본 기업들은 샘플 제품을 공짜로 써볼 것을 권해도 시간 낭비라며 매몰차게 거절했다. 그럴수록 전 회장은 오기가 생겼다. 지속적인 연구 개발로 장비의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한편 해외 전시회에 연간 10회 이상 꾸준히 참가해 이름을 알렸다.

결국 일본 이스즈를 시작으로 혼다, 닛산에 이어 지난해 10월에는 콧대 높던 도요타의 문을 열었다. 특히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으로 부품처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도요타는 제 발로 DTR를 찾아와 구매 의사를 밝혔다. 전 사장은 “10년 전 납품을 거절당한 도요타로부터 제의를 받고 벅찬 감동을 느꼈다”며 “이 분야에서 글로벌 넘버원이 될 때까지 가족 같은 직원들과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DTR#기어 호브 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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