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창구직원님, 이거 가짜통장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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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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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동 경제부
유재동 경제부
사건이 터진 지 벌써 며칠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수화기를 통해 전해지는 떨리는 듯한 목소리는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고 기자에게 하소연하는 것처럼 들렸다. 한주저축은행 ‘가짜 통장’ 사건의 피해자 A 씨의 얘기다.

서울에 사는 A 씨는 올해 초 충남 연기군 조치원에 있는 한주저축은행 본점에 직접 가서 돈을 맡겼다. 이렇게 먼 길을 가면서까지 예금을 한 것은 물론 이자를 많이 쳐주겠다는 약속 때문이었다. ‘저축은행 사태’로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예금액을 예금자보호 한도인 5000만 원 이하로 맞춰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누구도 상상 못할 일이 벌어졌다. 가지급금을 찾으러 간 A 씨는 “돈을 입금한 기록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계좌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니…. 이미 이 저축은행 임원이 돈을 갖고 달아난 뒤였다. 그 후 인터넷에선 “내 저축은행 통장이 가짜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법을 알려 달라”, “‘돈 떼먹지 않을 만한’ 착한 창구 여직원 고르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글들이 올라왔다. 이제 한국은 예금자들이 이런 것까지 알아야 자기 돈을 지킬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지금까지 드러난 저축은행 대주주와 일부 경영진의 행태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라는 말도 쓰기 아까울 정도다. 지난해 1, 2차 구조조정 때 드러난 비리보다 냄새가 더 역겹다. 당시 퇴출된 부산저축은행은 VIP 고객에게 돈을 미리 빼줬는데, 이번엔 아예 저축은행 대주주와 임원들이 고객 돈을 갖고 튀었다. 직원들에겐 “회사를 살리자”며 겉으론 비장한 얼굴을 보이면서 뒤로는 자기 재산을 차명, 가명, 유령회사 등 온갖 수단을 써 가면서 챙겨왔다.

30년 전 ‘가짜 서울대생’이던 김찬경 씨는 이번엔 신용불량자 신분으로 ‘금융인’ 행세를 했다. 김임순(한주) 윤현수(한국) 임석 회장(솔로몬)도 이미 경제범죄 전과자이거나 경영상의 각종 불법 행위 의혹을 받고 있다. 물론 고객들은 이런 사실도 모르고 이들에게 돈을 맡겼다. 금융당국이 제대로 파헤쳐 알리지도 않았고, 법정에서도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자격 없는 사람들에게 금융을 맡기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저축은행 회장, 은행장이란 타이틀로 고객 돈을 사금고처럼 다뤄온 이들의 비리 행태를 당국은 끝까지 밝혀야 한다. 긴 세월 한 푼, 두 푼 모아 온 서민들의 꿈이 지금 한순간에 날아갈 처지다.

유재동 경제부 기자 jarrett@donga.com
#가짜통장#저축은행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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