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공정위 ‘反시장적 개입’… 누구에도 도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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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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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기 경제부 기자
문병기 경제부 기자
정부가 대기업의 진출 금지 업종을 법으로 정한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는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7∼1981년)이 한창이던 1979년 도입됐다. 재벌 위주의 성장으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자 정부가 직접 중소기업 보호에 나선 것이다. 유모차와 문구류 등이 이 제도가 정한 대표적인 중소기업 고유 업종이다.

하지만 33년이 지난 지금 이 제도의 결과는 어떨까. 100만 원이 훌쩍 넘는 유럽산 유모차가 ‘국민 유모차’가 되고 일본산 필기구와 미국산 노트가 문방구를 휩쓸고 있지만 정부의 보호를 받은 중소기업들 가운데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한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처럼 정부의 시장개입은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환부를 도려내는 의사의 메스 같다면 정부가 휘두르는 칼날은 무딘 도끼날에 가깝기 때문이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와 현대, 신세계 등 빅3 백화점과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에 중소기업 제품 상설판매관 설치를 요청했다.

▶본보 8일자 A10면 공정위, 롯데 현대 신세계 등 빅3 백화점과…


공정위는 “동반성장 차원에서 값싸고 우수한데도 백화점 납품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을 위해 제안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쟁력 있는 제품과 브랜드를 골라 입점시키는 일은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권한이지 정부의 역할이 아니다. 정부가 정책적 목표를 위해 정부 조달시장에서 중소기업에 일정 부분 혜택을 줄 수는 있지만 불공정거래 규제기관인 공정위가 유통업체에 중소기업 전용 매장을 검토하라고 하는 것은 월권행위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해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에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

동반성장을 명분으로 한 반(反)시장적 일탈 조짐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최근 급식업체 아워홈은 한국전력의 구내식당 입찰에 참여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대기업 계열사들을 공공기관 급식사업자에서 배제하기로 한 정부 방침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아워홈은 이미 12년 전 LG그룹 계열사에서 분리된 중견기업으로, 이 규정의 적용대상이 아니었지만 기획재정부와 청와대가 ‘정서법’을 들며 입찰 참여를 막았다는 후문이다.

이뿐만 아니다.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폐지된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가 지난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이름을 바꿔달고 부활했고 대형마트는 지난달부터 매달 이틀씩 강제로 문을 닫고 있다. 정부는 정교함과 절제를 잃은 정책이 ‘시장의 실패’보다 무서운 ‘정부의 실패’를 낳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병기 경제부 기자 weappon@donga.com
#대기업#기업#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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