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의 늪, 불법 사금융]원금 5억에 이자 9억… 그는 ‘사채 괴물’이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불법사금융 피해신고 8일새 1만건 돌파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불법 사금융은 끝까지 추적해 반드시 뿌리 뽑겠다”며 ‘불법 사금융과의 전쟁’을 선포한 지 9일 만인 25일 사금융 피해 신고 건수가 1만 건을 돌파했다. 연간 2만여 건의 신고가 접수되는 것을 감안하면 단기간 신고 건수로는 놀라운 수치다.

총리실은 18일부터 25일까지 불법 사금융 관련 피해 신고가 금융감독원 8873건, 경찰청 1107건, 각 지자체 84건 등 총 1만64건이 접수됐다고 26일 밝혔다. 금감원은 8873건 중 1667건을 수사기관에 통보했다. 지난해 상반기 금감원이 2889건을 통보한 것에 비춰보면 이 역시 상당한 성과다. 그만큼 많은 피해자가 곳곳에서 사채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에도 상당수 서민은 여전히 불법 사금융 피해의 그늘에서 고통을 겪고 있었다. 폭행이나 신체포기각서 요구, 인신매매 등의 극단적인 사례는 줄고 있지만 단속을 피하려는 업자들의 수법은 더 교묘해지고 집요해지고 있었다. 일부 업체는 ‘○○금융’이라는 이름으로 합법을 가장해 접근한 뒤 수십∼수백 %의 고리로 채무자들의 고혈을 빨고 있다.

한의사 황모 씨(49)는 한의원 임차료와 인건비, 은행대출 이자를 낼 돈이 부족해 지인이 ‘괜찮은 사업가’라며 소개해 준 최모 씨(50)에게서 2년간 5억 원을 빌렸다가 14억 원이 넘는 돈을 갚아야 했다. 업자는 “은행 이자를 갚으려면 내 돈을 계속 써라”며 반강제적으로 돈을 계속 빌려줬다. 결국 그는 업자의 괴롭힘에 못 이겨 지난해 땅을 헐값에 팔고 한의원을 정리해 모든 빚을 갚았다. 황 씨는 “협박이 이어질 때마다 돈을 줘서 연이율이 도대체 몇 %인지 계산도 못했다”고 했다.

채권 추심업자들의 횡포도 계속되고 있다. 이모 씨(38·일용직)는 지난해 생활비가 부족해 휴대전화로 온 문자를 보고 연이율 270%에 100만 원을 빌린 뒤 돈을 갚지 못하자 불법 사채업자에게서 “장기를 팔아서라도 갚아라”는 등의 각종 협박을 받았다. 이들은 이 씨의 노모와 아들에게도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직장과 집을 불시에 찾아오고 가족과 지인까지 괴롭히는 불법 추심 행각 때문에 불법 사금융을 통해 돈을 빌린 사람들은 “빚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빚 독촉 때문에 죽겠다”고 호소할 지경이다.

[채널A 영상] “이자율 36%, 버티기 힘들어” 남편이 목숨 끊자 아내에게…

전문가들은 “정부의 강력한 단속이 일시적으로는 불법 사금융을 추방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상시 단속 인력 확충과 정부 차원의 서민금융 활성화 같은 후속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고현국 기자 mck@donga.com  
#금융#대출#불법사금융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