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발효 D-1]1만원짜리 와인 세금 2000원 줄어… 정부 “값 인하 챙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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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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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15일 0시(통관시간 기준)에 공식 발효된다. 2006년 6월 양국 정부가 협상을 개시한 지 5년 10개월, 2007년 4월 협상을 타결한 지 4년 11개월 만이다. 거대 시장 미국과의 FTA 발효로 한국 경제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유럽연합(EU)까지 포함해 세계 무역의 60.9%를 차지하는 경제권에 ‘관세 없는 접근권’을 얻었기 때문이다.

무역 및 국내총생산(GDP) 증가, 일자리 창출 등 거시경제적 효과와 함께 다양한 상품의 선택에 따른 소비자 편익 제고 등 실생활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하지만 산업 구조개혁, 농어촌 붕괴, 빈부격차 확대 등 예상되는 부작용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한미 FTA가 독(毒)이 될 수 있다는 경고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 일자리 35만 개 창출 기대


15일 0시 이후 한국은 7218개(품목 수 기준 85.6%), 미국은 6178개(87.6%) 품목의 관세를 즉시 폐지한다. 관세가 낮아지면서 지난해 1000억 달러(수출 562억 달러, 수입 521억 달러)를 처음 넘어선 한국과 미국의 교역규모가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 국책연구소들은 한미 FTA 발효로 대미(對美) 수출이 앞으로 15년간 연평균 12억8500만 달러, 수입은 11억5000만 달러씩 늘어나고, 무역수지도 연평균 1억3800만 달러씩 흑자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한국의 실질 GDP는 중장기적으로 5.66% 늘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정부는 수출 증가와 투자 확대 등으로 단기적으론 4300개, 장기적으로는 35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과 EU, 동남아국가연합(ASEAN) 등 세계 3대 경제권과 FTA를 맺은 ‘FTA 허브국’의 이점을 누리려는 외국 기업들의 대한(對韓) 투자 확대, 해외로 나갔던 한국 기업들의 ‘U턴’ 등이 가시화하면 일자리는 더 늘어날 수 있다.

○ 업종별 희비 크게 엇갈려


한국의 주력 수출업종인 자동차, 차 부품, 석유제품, 전자, 반도체 등은 관세 인하와 통상마찰 완화로 많은 혜택을 본다. 특히 한국산 자동차는 미국 측 관세의 즉시 철폐로 수출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농업, 수산업, 축산업 부문의 생산 감소는 피할 수 없다. 농림수산식품부는 국내 농어업 생산액이 발효 5년 차에 7026억 원, 10년 차에 1조280억 원, 15년 차에 1조2758억 원 등 15년간 연평균 8445억 원의 생산 감소를 예상하고 있다. 국내 제약업체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특허권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복제의약품의 제조시판을 유보하도록 한 ‘허가특허 연계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미국 대형 제약사들의 특허권이 더욱 강화돼 국내 업체의 복제약이나 개량신약 개발이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 미국 수입품 가격 낮아진다


일반 소비자가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미국산 상품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점이다. FTA 발효로 체리(24%) 포도주스(45%) 건포도(21%) 와인(15%) 의류(13%) 가방류(8%) 등 수입물품 9016개에 대한 관세는 즉시 철폐된다. 레몬(30%) 오렌지주스(54%) 생삼겹살(22.5%) 맥주(30%) 등은 단계적으로 관세가 철폐돼 가격하락의 유인이 생긴다.

1만 원짜리 와인을 미국에서 수입할 때 종전에는 6824원의 세금(관세, 부가가치세 등)을 물었지만 발효 후에는 4630원의 세금만 물면 된다. 5000만 원짜리 미국산 수입차는 FTA 발효 전 1712만2000원의 세금을 물어야 했지만 발효 후에는 1314만8800원으로 약 400만 원의 세금이 줄어든다. 재정부 관계자는 “관세인하 효과가 실제 가격에 반영되도록 FTA 발효 전후 주요 품목의 수입가격과 물량을 비교 분석해 공개하는 등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 ‘진실’ 드러날 괴담-오해 ▼
① “ISD로 건보 폐지”… 사회보장제도는 소송 못해
② “이익균형 깨졌다”… 車업계 “여전히 혜택 크다”
③ “맹장수술 800만원”… 보건의료, 개방서 제외돼


15일 역사적 발효를 앞두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2007년 4월 타결된 후부터 숱한 오해와 괴담에 시달려 왔다. 통상 분야에 생소한 일부 시민 사이에선 ‘FTA는 나쁜 것, 퍼주는 것’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빠르게 확산됐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협상을 타결한 민주통합당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미 FTA 때리기로 일관하면서 이런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일부 좌파 성향 단체가 주도한 반미, 반대기업 분위기와 세계 최대 경제대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등이 뒤섞이며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잘못된 정보가 퍼져 나갔다.

대표적인 오해가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둘러싼 논란이다. 민주당은 ISD가 경제, 사법주권을 왜곡하기 때문에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ISD는 노무현 정부 당시 첫 타결안에 포함된 내용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발효된 6개 FTA와 81개 투자협정(BIT)에 모두 들어가 있다.

자동차 분야 재협상도 야당이 왜곡한 대표적 사례다. 재협상으로 당초 즉시 철폐될 예정이던 양국 간 승용차 관세를 미국은 발효 후 4년간 유지하고, 우리는 발효 즉시 8%→4%로 인하한 뒤 4년 후 완전히 철폐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야권은 ‘이익의 균형’이 깨졌다며 한미 FTA 재재협상 및 폐기를 주장했지만 정작 자동차 업계는 “이익이 다소 줄었지만 그래도 혜택이 크다”고 환영했다.

지난해 비준 과정을 거치며 ISD를 둘러싼 괴담은 극에 달했다. ‘미국 보험사들이 우리 건강보험제도를 ISD로 제소하면 건보가 폐지된다’ ‘ISD가 작동되면 볼리비아처럼 수도요금이 폭등해 빗물을 받아먹고 살아야 한다’ ‘ISD로 그린벨트가 무효화된다’ 등이 대표적인 괴담이었다. 사회보장제도, 부동산 정책 등 공공정책은 ISD 소송 대상이 아니고 볼리비아는 미국과 FTA를 맺지 않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오해가 풀리는 듯했지만 인터넷 공간에서는 여전히 ‘괴담’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사실’에 충실해야 할 전문가들이 괴담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한미 FTA가 체결돼 (맹장) 수술비가 4배 정도 상승하면 800만 원 정도이고, 영리병원은 900만 원이 아니라 1000만 원도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보건의료 시스템은 개방 대상에서 제외됐다. 영리병원은 FTA와 무관하게 경제자유구역, 제주특별자치도 등에서 추진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ISD 논란 등 허무맹랑한 주장으로 정작 필요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며 “비생산적 논쟁이 엄청난 국력 손실을 낳았다”고 말했다.
농축수산업 54조 지원… “현금위주 문제” 지적도
■ 보완해야 할 과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발효가 장밋빛 미래만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농어업, 제약업, 경공업과 소상공인 등 한미 FTA 발효로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는 한미 FTA 발효로 농축수산업 생산액이 향후 15년간 총 12조 원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총 24조 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당초 22조 원을 FTA 대책 예산으로 책정했지만 국회 비준 과정에서 2조 원이 추가됐다. 여기에 세금 지원 30조 원을 더하면 총 지원규모는 54조 원에 이른다.

특히 보완대책의 일환으로 피해보전 직불제 발동요건이 평균가격 대비 85% 미만에서 90% 미만으로 완화됐다. 피해보전 직불제는 FTA 발효 이후 수입이 증가해 특정 농산물 가격이 떨어졌을 때 차액을 보전해주는 제도다. FTA 때문에 농가가 폐업할 경우 3년 치 순수익을 폐업지원금으로 지급하고 △축사시설 현대화 지원 3조 원 △융자금리 3%에서 1%로 인하 △수출전략 종자개발 5000억 원 지원 등도 펼칠 예정이다. 이 밖에 FTA로 피해가 발생한 기업에 컨설팅을 지원하는 무역조정지원제도, 3200억 원 규모의 소상공인 진흥계정 신설도 추진된다.

하지만 농어업 대책 중 상당수가 피해를 보는 농어민을 달래기 위한 현금 지원에 집중되면서 FTA를 활용하는 진정한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지 불투명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농민들의 반발이 거셀 때마다 보상 대책을 계속 내놓으면서 향후 추진할 한중 FTA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형 유통시설 영업을 규제하는 유통법, 상생법이 FTA와 충돌할 여지가 있는데도, 정부가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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