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넘게 타는 미국, 8년 타고 버리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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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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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폐차 대수 작년 84만5799대 ‘사상 최고’

8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폐차장에서 지게차가 분주히 차를 나르고 있다. 쌓여 있는 차량 중 상당수가 운행에는 큰 지장이 없는 차량이었다.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8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폐차장에서 지게차가 분주히 차를 나르고 있다. 쌓여 있는 차량 중 상당수가 운행에는 큰 지장이 없는 차량이었다.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8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의 한 폐차장. 영하의 날씨에도 폐차들을 실어 나르는 지게차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한편에는 해체작업을 기다리는 폐차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문짝이나 트렁크가 떨어져 나간 낡은 차들이 대부분이지만, 겉보기에 별문제가 없어 보이는 깨끗한 차도 적지 않았다. ‘벤츠 S클래스’나 ‘볼보 S80’ 등 고급 수입차도 눈에 띄었다.

어디선가 ‘쿵’ 하는 굉음이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굴착기가 국산 중형차 한 대를 번쩍 들어올려 바닥에 내리쳤다. 굴착기는 차에서 구리 재질의 배선이나 아연 재질의 라디에이터그릴 등 재활용이 가능한 비철금속 부품을 떼어냈다. 속이 텅 빈 차는 압축기에 들어가 조금씩 우그러들기 시작했다. 차 한 대가 손 한 뼘이 조금 넘는 두께의 고철덩어리로 압축되는 데는 1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 폐차장에서 20여 년을 일해 온 권순만 전무이사는 “최근 폐차로 들어오는 차들은 예전과 달리 조금만 손을 보면 다시 탈 수 있는 차가 적지 않다”며 “폐차장에서는 차를 수리해 되팔 수 없어 재활용이 가능한 부품을 분리하고 나머지는 고철로 처리한다”고 말했다.

○ 지난해 폐차 대수 사상 최고


9일 한국자동차해체재활용협회(KADRA)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폐차 대수는 총 84만5799대로 사상 최고치였다. 이 중 승용차는 64만6739대. 택시나 법인차량 등 사업용을 제외한 개인용 차는 2010년보다 약 26% 늘어난 61만8740대에 달했다.

협회에 따르면 지난해는 신차 교체 수요가 크게 늘어나며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폐차 대수가 크게 늘었다. 경기 부양을 위해 노후차량 교체 시 특별소비세 감면, 7년 이상 된 디젤차량 폐차 시 보조금 지급 등 세제 혜택이 늘어난 점도 한몫했다.

자동차재활용협회 김학훈 차장은 “최근 폐차로 들어오는 차 중 약 90%는 운행이 가능한 차”라며 “승차감이나 편의성 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폐차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폐차 중 적지 않은 수가 등록 말소 후 정비공장을 거쳐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지에 중고차로 수출돼 운행되고 있다고 김 차장은 설명했다.

폐차장으로 직행하는 차도 늘었다. 중고차 매각이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 반면 폐차는 전화만 한 통 하면 차를 가지러 오기 때문에 처리가 간단해서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S폐차장 관계자는 “일부 차종은 폐차 시세가 중고차 값보다 높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정비해 가며 타는 문화’ 부재 지적



이처럼 멀쩡한 차의 폐차가 늘어나는 것을 두고 일각에선 차에 애정을 갖고 주기적으로 정비하는 ‘거라지(Garage·차고) 문화’가 국내에서 아직 자리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또 업소마다 천차만별인 정비요금에 대한 불신이 커 비싸게 돈 들여 정비하느니 아예 폐차하는 경우도 많다.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닌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기 때문에 신차 교체주기가 빠르다는 지적도 있다. 중고차 전문업체인 카피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승용차 평균 보유기간은 8년, 운행거리는 14만 km다. 미국·유럽 등에서는 평균 15년간 차를 보유하며 28만∼40만 km를 운행한다.

자동차시민연합의 임기상 대표는 “최근 나오는 차들은 관리만 잘하면 50만 km 이상을 충분히 탈 수 있다”며 “새 차 구입비는 아깝지 않아도 정비에 드는 돈은 아깝다고 여기는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원=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김의태 채널A 기자 et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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