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 자본주의’ 일자리로 풀자]<5>사회서비스 일자리 ‘양보다 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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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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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예산 年 1조4575억원 투입… ‘도로변 풀베기’ 시켜서야

21일 부산 수영구 망미2동 망미초등학교에서 1, 2학년생들이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중 하나인 재즈댄스를 배우고 있다. 방과후학교 전문 사회적 기업인 ‘부산 행복한 학교 재단’이 이 수업을 위탁받아 운영 중이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21일 부산 수영구 망미2동 망미초등학교에서 1, 2학년생들이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중 하나인 재즈댄스를 배우고 있다. 방과후학교 전문 사회적 기업인 ‘부산 행복한 학교 재단’이 이 수업을 위탁받아 운영 중이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복지 분야는 일자리 창출이 가장 유망한 영역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와 고령화로 보육, 의료, 교육 등 사회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정부가 규제 혁파로 이 분야의 산업화를 유도하고, 산업화가 어려운 영역은 재정을 투입해 일자리를 직접 만들면 ‘복지와 일자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오영석 산업연구원 산업구조팀장은 “국제 경쟁이 치열한 제조업은 노동생산성 때문에 고용 늘리기에 한계가 있지만 복지 분야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얼마든지 고용 창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6년부터 재정을 투입해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직접 창출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가사간병도우미, 문화관광해설사, 아이돌보미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정부가 일자리 수에만 급급해 ‘알바’성 저임금 임시직 일자리를 양산하다 보니 서비스 질이 나빠지고 종사자의 보수나 자존감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기회만 생기면 다른 직종으로 옮겨가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복지 확대와 고용 창출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정부 스스로 사회서비스 일자리 사업에 대한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① 공공근로와 명확히 구분해야


전문가들은 당장 사회서비스 일자리 사업을 구조조정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자리를 줄이라는 게 아니라 사업 성격을 명확히 하라는 것이다. 당초 이 사업은 사회서비스 확대가 우선이고, 일자리 창출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본말(本末)이 뒤집히면서 사회서비스와 공공근로 구분이 모호해졌다.

정부의 일자리 예산관련 실제 사업명세를 보면 사회서비스 일자리로 부적합한 사업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는 새해에 1조4575억 원을 투입해 사회서비스 일자리 17만4849개를 직접 창출할 계획이다. 이 중에는 외환위기 때 공공근로로 도입된 뒤 사회서비스 일자리로 둔갑해 지속되는 사업도 있다. 산림청의 ‘숲 가꾸기’는 생활권 주변 숲이나 도로변의 덩굴 제거, 풀 베기 등 단순작업에 10개월 계약의 일일근로 형태로 공공근로의 성격이 강하다. 사회서비스는 일정 수준의 자격과 경험을 갖춘 이들이 제공할 수 있는데 정부가 근시안적으로 공공근로와 마구 섞으면서 사회서비스의 발전을 막게 된 것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회서비스 일자리 사업의 방향을 재정립할 때”라면서 “이 분야에서 안정적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산업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기 계약직 위주의 일자리 늘리기 식 정책 설계나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정책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② 사회적 기업 키워 운영 맡겨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만들기보다 점차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혜원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회서비스 분야를 민간에 이양하고 품질을 관리함으로써 ‘복지 마켓’을 확대해 자연스레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서비스 시장을 조성하라는 얘기다.

‘부산 행복한 학교 재단’은 교육과학기술부의 방과후학교 사업을 위탁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보통 방과후학교 강사들은 학교장과 개별 근로계약을 한 뒤 자신의 수업을 선택한 학생 수에 따라 강의료를 받는다. 일자리도 급여도 불안정하다. 하지만 재단에 속한 57명의 강사들은 안정적인 ‘파트타임 잡’을 하고 있다. 서류심사, 면접, 모의수업 등을 거쳐 채용되면 하루 4시간씩 주5일 수업으로 월 100만 원을 받는다. 4대 보험 혜택에 1년 이상 근무하면 퇴직금도 나온다. 자연히 교사자격증을 가진 주부, 대학원생 등 ‘풀타임’ 형편이 안 되는 우수 인력이 모여들었다. 수준 높은 강사진에 대한 소문이 나면서 지난해 9월 5개 학교의 위탁 운영으로 출발한 재단은 현재 21개 학교의 방과후수업을 맡고 있다.

박원표 재단 상임이사는 “정부가 인건비 지급식 일자리 사업을 버리고 프로그램 기획력을 가진 전문가들로 구성된 사회적 기업 지원 정책으로 바꾸면 점차 사회서비스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③ 지역 맞춤형 전문기관 키워야


부산시 산하의 사회서비스투자사업지원단은 올해 ‘해양역사문화체험’ ‘찾아가는 치매예방교실’ 등 46가지 지역 맞춤형 사회서비스를 개발해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로 인해 새로 창출된 일자리가 월평균 904명에 이른다. 이상곤 실장은 “지역 전문기관을 육성하고, 시장을 형성하는 등 사회서비스 분야를 독자적인 산업 영역으로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을 포함해 서울 대구 광주 대전 경기 등 6곳에 사회서비스 투자사업 지원단이 가동 중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맞춤형 사회서비스를 발굴, 기획해 보건복지부에 요청하면 예산을 지원해 주는 방식이다. 6곳의 지원단은 올해 중앙 부처에는 없는 739개의 지역 사회서비스 사업을 개발했다. 덩달아 지역 상황에 맞는 일자리도 생겼다.

돈이 없는 지자체일수록 복지 수요는 많다. 하지만 지방정부는 중앙정부가 지정한 복지사업에 예산을 대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에 일자리 재정 지원을 강화하고 정책 자율성을 확대하는 게 복지나 고용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인재 한신대 재활학과 교수는 “지자체에 사회서비스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서비스 발굴체계를 갖추는 것이 지역 맞춤형 사회적 일자리 창출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④ 정부 ‘부처 이기주의’ 버려야


정부의 일자리 사업이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각 부처에 분산 추진되는 사업을 총괄 조정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예산 확보가 부처 간 파워 게임 양상을 띠면서 부처 이기주의로 중복 사업을 벌이는 일도 많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자활근로와 행정안전부의 희망근로 프로젝트는 모두 최저생계비 120% 이하의 저소득층 대상 일자리 사업으로 성격이 비슷하다. 그러나 자활근로의 인건비(하루 2만7000원)가 희망근로(하루 3만3000원)보다 낮아 이 사업의 참여가 저조했다. 하지만 두 부처는 내년에도 비슷한 사업을 추진한다. 예산만 확보되고 자신의 영역이 침범당하지 않는다면 다른 부처 사업은 내 알 바 아니라는 공무원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사회서비스 일자리 사업의 중복은 서비스의 질에도 큰 영향을 준다. 국민은 서비스 질에 만족해야 재정이 투입되는 일자리 확대에도 동의를 보낸다. 예컨대 운영 방식이나 사업 내용이 유사한 여성가족부의 ‘아이돌보미’와 보건복지부의 ‘산모·신생아도우미’는 보육정책의 큰 틀에서 통합 운영해 돌보미의 숙련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이규용 연구위원은 “지역을 포함해 상이한 전달체계로 진행되는 다양한 일자리 사업을 총괄 조정할 수 있는 조직적인 틀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⑤ 일자리 예산 두배이상 늘려야


정부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추경예산을 편성해 일자리 예산을 대폭 늘렸다. 2008년 3조5849억 원이던 일자리 예산은 2009년 10조9126억 원으로 훌쩍 뛰었다. 이후 매년 9조∼10조 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새해에도 10조1107억 원이 편성돼 있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고용 아웃룩(Outlook)’에 따르면 한국의 일자리 예산은 여전히 ‘글로벌 스탠더드’에 못 미친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자리 예산 비중이 2008년 0.48%에서 2009년 0.82%로 높아졌지만 OECD 평균 1.67%와는 거리가 있다. 일자리 예산 가운데 교육, 훈련이나 고용지원 서비스에 대한 투자는 특히 낮았다.

전문가들은 사회서비스 일자리는 민간시장이 활성화될 때까지 정부의 ‘마중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금재호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민간시장이 발달하지 않았거나 수익성 때문에 민간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선 정부가 전문적인 자원을 키워내고 재정 투입을 통해 초기 사업을 끌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예산이 일회성 일자리에 소모되지 않도록 일자리 사업 참여자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훈련 프로그램을 결합한다든지 사업 참여 이후 민간 부문에 취업하도록 고용지원 서비스를 연계하는 것도 필요하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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