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악몽, 그 후 1년]반값한우-金돼지 희비… 우유대란에 두유 ‘대박’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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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시장-생활경제 변화

국내 축산시장을 유례없는 혼란에 빠뜨린 구제역이 29일로 발생 1년을 맞는다. 지난 1년간 우리나라 축산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큰 변화를 겪었다. 한우 값이 급락한 반면 돼지고기 값은 크게 뛰었다. 또 구제역을 틈타 세계 각국의 축산업자들은 한국 땅에 자신들의 돼지고기를 팔기 위해 뜨거운 경쟁을 벌였다.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진 것은 육류시장만이 아니었다. 구제역으로 젖소 수가 줄어들어 예상치 못했던 원유대란이 일어나면서 원유 값 상승과 함께 대체재인 두유 판매 증가라는 ‘풍선효과’를 낳기도 했다. 구제역 발생 1년을 맞아 구제역이 우리 생활경제에 가져온 영향과 의미를 분석해봤다.

○ 한우의 추락, 돼지의 질주


구제역 발생 후 국내 축산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두 가지 변화는 ‘한우 값 급락’과 ‘돼지고기 값 급등’이었다. 지난해 평균 3만5000∼3만8000원 선에 거래됐던 한우(갈비 500g·1등급 소매가 기준)는 구제역 발생과 동시에 계속 값이 떨어져 11월 평균 2만1800원 선(23일까지)에 거래된다. 반면 지난해 7000∼8000원대에 거래됐던 돼지고기(삼겹살 500g·중품 기준) 값은 구제역 이후 값이 급등해 올여름에는 한때 최고 1만700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소와 돼지 모두 ‘구제역으로 인한 도살처분’을 겪고도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어떻게 달랐을까.

한우는 올 초 발생한 구제역으로 15만1000마리가 도살처분됐다. 이는 적지 않은 수이지만 그럼에도 올해 한우시장은 계속 공급 과잉(전국에 약 300만 마리로 추정) 상태였다. 최근 몇 년간 한우고기 값이 높게 형성되자 축산농가들이 너도 나도 한우를 길러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진 것이다.

특히 올 초 구제역이 터지면서 상당 기간 가축의 이동 및 도축이 제한됐던 게 한우시장에 직격탄이 됐다. 다 키워 놓고도 시장에 내놓을 수 없었던 소들이 4월 3일 ‘이동 및 도축 제한 해제’ 조치 후 한꺼번에 시장에 몰리면서 한우 값 급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 소비자는 “차라리 (질병에 노출된) 한우보다 외국산이 안심된다”며 한우보다 절반 이상 싼 수입 쇠고기를 선택하기도 했다. 정부와 축산업계는 ‘군대 급식에 한우고기 사용’ ‘반값 한우 폭탄세일’ 등 대책을 내놓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농림수산식품부 축산정책과 관계자는 “구제역 도살처분에도 올해 한우 사육 규모는 사상 최대 수준이었다”며 “앞으로 적어도 1∼2년은 한우값 하락세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반면 한우보다 20배나 많은 331만8000마리의 돼지가 도살처분된 돼지고기 시장은 올해 내내 극심한 공급 부족에 시달렸다. 특히 새끼돼지를 낳는 데 필요한 종돈(種豚·씨돼지)과 모돈(母豚·어미돼지)이 약 33만 마리나 도살처분되면서 돼지농가들은 재기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 수입 고기 전성시대


구제역 발생 후 돼지고기가 서민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떠오르자 정부는 수입 돼지고기에 대한 관세율을 일시적으로 제로(0%)로 만드는 할당관세 적용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이에 따라 수입물량은 급증했다. 10월 말까지 올해 한국의 돼지고기 수입량은 32만2062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수입량(14만8403t)보다 2배(117% 증가)로 늘었다. 수입 쇠고기 역시 지난해 10월 말까지 20만3381t이 들어왔지만 올해는 같은 기간 4만 t가량 늘어난 24만4626t이 들어왔다.

해외 축산업자들의 공격적인 국내시장 진출도 수입 고기 증가에 한몫했다. 폴란드 헝가리 같은 동유럽 국가를 비롯해 아일랜드 독일 스페인 칠레 미국 멕시코 프랑스 오스트리아 캐나다 벨기에 핀란드 호주 스웨덴 네덜란드 덴마크 등 17개 나라의 축산업자들은 구제역을 계기로 ‘기회의 땅’으로 떠오른 한국에 대한 수출을 강화했다. 이 나라들은 올해 전년과 비교해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22배까지 한국에 대한 돼지고기 수출을 늘렸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산 돼지고기 값이 전년 동기 수준으로 안정되면서 수입량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를 보인다.

○ 주목받는 두유


예상치 못했던 타격은 또 있었다. 구제역으로 약 4만 마리의 젖소가 도살처분되면서 원유 공급이 부족해진 것이다. 정부는 당초 우유 품귀 현상을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런 현상이 ‘원유 파동’으로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

낙농농가들은 7월 “구제역으로 900여 젖소 농가가 폐업하고 젖소 수마저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이대로는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다”며 원유값 인상을 주장하고 나섰다. 낙농농가들이 원유 공급 중단 투쟁까지 벌인 결과 우유가격은 지난달 소매점 기준으로 9.5% 올랐다.

우유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나타난 현상 가운데 하나는 소비자들과 식품업계가 우유의 대안으로 ‘두유’를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크라운베이커리, 뚜레쥬르, 투썸플레이스 등 제빵·커피업계는 최근 속속 우유 대신 두유를 넣은 메뉴를 개발해 선보였다. ‘베지밀’을 만들어 파는 정식품 측은 “올해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22%나 늘었다”며 “지난해 3300억 원 규모였던 두유 시장이 올해는 4000억 원 시장으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이마트에서는 10월 두유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1% 급증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우병준 축산관측팀장은 “이번 구제역을 겪은 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마을별로 축산업을 까다롭게 제한하는 조례가 생긴 데다 동네 사람들이 침출수 등 환경문제가 생길까봐 축산농가들을 기피하는 현상마저 생겨 국내 축산업계가 구제역 발생 이전 규모로 돌아가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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