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경제 시대가 온다]<3>블랙컨슈머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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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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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물건 공유할 사람 내가 선택… ‘악덕 소비자’ 설 땅 없다

에어비앤비는 숙소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집주인이 요청할 경우 전문 사진가가 직접 찾아가 숙소를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 게시한다. 사진은 이렇게 ‘에어비앤비로부터 인증된(Airbnb Verified)’숙소들. 왼쪽부터 미국 샌타크루즈의 나무 위 오두막, 스페인 히로나 근교의 저택, 핀란드 헬싱키의 아파트.
에어비앤비는 숙소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집주인이 요청할 경우 전문 사진가가 직접 찾아가 숙소를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 게시한다. 사진은 이렇게 ‘에어비앤비로부터 인증된(Airbnb Verified)’숙소들. 왼쪽부터 미국 샌타크루즈의 나무 위 오두막, 스페인 히로나 근교의 저택, 핀란드 헬싱키의 아파트.
《 7월 말 EJ라는 ID를 쓰는 한 여성이 에어비앤비에 집을 내놨다. 일주일 동안 출장을 가면서 임대료를 벌어 보자는 생각이었다. 출장에서 돌아오니 난리가 났다. 손님이라 생각했던 사람은 도둑으로 돌변했다. 가구와 집기를 모두 부수고, 구석구석 집안을 뒤진 뒤 숨겨둔 보석까지 꺼내 갔다. 컴퓨터와 백업용 하드디스크까지 모두 들고 나간 탓에 십수 년을 모아온 일기와 사진까지 사라졌다. 에어비앤비는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2008년 창사 이래 첫 위기를 맞았다. 손님의 얼굴도 보지 않은 채 열쇠를 맡겼던 EJ의 부주의란 의견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대부분의 사람은 선하고 믿을 만하다”는 전제에서 시작한 에어비앤비의 공유경제 모델이 위기에 부닥친 것이다. 》
8월 초 브라이언 체스키 최고경영자(CEO)가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리고 보름 동안 이들은 모두 40개의 예방 조치를 내놨다. 에어비앤비 대변인 에밀리 조프리언 씨는 “샌프란시스코 본사 직원 70여 명이 보름 동안 집에도 거의 들어가지 않고 회사에서 먹고 자며 새 기능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잘못을 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건 놀라운 게 아니었다. 놀라운 건 에어비앤비 사용자들의 반응이었다.

○ 소비자가 만들어가는 신뢰

이들은 회사가 마련한 게시판에 신뢰 회복을 위한 다양한 제안을 했고, 회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18일 현재까지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수많은 아이디어가 새로 올라오고 사용자들은 직접 이런 아이디어에 대해 투표를 벌인다. 투숙객을 거절하면 해당 집주인의 집이 검색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던 문제 등이 이렇게 해결됐다. 에어비앤비의 집주인들은 “내 집은 내 집”이라며 “원치 않는 손님을 받지 않아도 어떤 불이익도 없게 해달라”고 말했다. 회사는 이 문제를 가장 먼저 해결했다. 조프리언 씨는 “그때까지 약 200만 건의 숙박 거래가 큰 문제 없이 끝났는데 단 한 건의 피해에 소비자들이 이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는 게 더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대기업은 악덕 소비자에게 선의의 소비자보다 더 많은 보상을 했다. 통신사는 장기 이용 고객보다 신규 가입자를 우대하고, 백화점은 조용히 쇼핑하는 고객은 그냥 돌려보내도 매장 앞에서 소리치며 항의하는 고객에겐 따로 상품권을 줬다. ‘브랜드’라는 게 기업만의 자산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유경제 모델에선 다르다. 소비자도 자신의 평판을 관리해야 한다. 기존 경제시스템에선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는 금융신용이 소비자가 관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었지만 공유경제 시스템에선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공동체 내부에서의 평판이 가장 중요하다.

평판은 공유경제 모델에서 때론 돈처럼 사용되는 재산이다. 신용도가 높은 사람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금리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에어비앤비와 비슷한 숙박 알선 서비스인 ‘카우치서핑’은 에어비앤비와는 달리 숙소 이용료를 받지 않는다. 그 대신 외국인 여행자에게 잠자리를 내주고 이들과 ‘좋은 추억’을 얻기 위해 집을 빌려주는 서비스다. 특징은 집주인이 손님을 까다롭게 고른다는 것이다. 카우치서핑 서비스를 잘 이용하려면 평소 이 서비스 내에서 좋은 평판을 쌓아야 한다. 집주인들의 좋은 평가가 쌓이면 다음 집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또 이 서비스를 처음 이용하는 사람은 몇 가지 독특한 질문을 받는다. 예를 들어 “존 레넌을 좋아하시나요”나 “앤디 워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같은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마치 룸메이트를 고르는 방식과 비슷해 이 서비스에서는 평판이 곧 재산인 셈이다.

요리를 해준다거나 장을 대신 봐 주는 식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태스크래빗에서는 경매 시스템도 존재한다. 요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요리를 잘하기로 유명한 사람은 이런 공유경제 시스템의 평판을 통해 더 높은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 SNS의 도움

하지만 처음 창업하는 서비스들이 하루아침에 이런 식의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또 공유경제 모델은 최근 1, 2년 새 급속하게 생겨나고 있는 새로운 사업모델이다. 이런 약점을 해결해준 것이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였다. 실리콘밸리에서 생겨난 대부분의 공유경제 모델은 ‘공개인증(Open Authentication)’이란 방식을 이용해 페이스북 계정에 로그인하는 것만으로 별도의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고도 서비스에 로그인하게 해준다. 페이스북이 이런 서비스에 가입하는 사람의 신원을 보증해주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해당 서비스에서는 신규 가입자가 기존에 친구관계가 어떤지, 평소 어떤 활동을 해왔던 사람인지를 다른 가입자에게 보여줄 수 있다. 페이스북이 쌓아놓은 사회적 관계망과 신뢰를 빌려오는 셈이다. SNS는 개인의 사생활을 여과 없이 노출한다는 점에서 부작용을 낳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SNS만 살펴도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게 돼 공유경제 모델의 성장을 도왔다. 조프리언 씨도 “페이스북이 없었다면 에어비앤비도 창업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페이스북도 스스로의 이런 역할을 잘 알고 있다. 페이스북에 따르면 페이스북 가입자 8억 명 가운데 약 5억 명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페이스북을 이용한 외부 서비스를 이용한다. 에어비앤비와 릴레이라이즈 같은 공유경제 서비스가 이런 대표적인 서비스다. 그리고 페이스북 가입자들은 평균 130명의 친구를 갖고 있다. 이 정보가 공유되기 때문에 공유경제 모델이 작동하는 셈이다.

페이스북의 플랫폼프로덕트팀 매니저인 칼 소그린 씨는 정보기술(IT) 전문지인 패스트컴퍼니와의 인터뷰에서 “에어비앤비 같은 사업모델에서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선한 의도야말로 가장 큰 인센티브를 얻는 길”이라며 “한 번 나쁜 평판을 남기면 인터넷의 특성상 앞으로 비슷한 다른 모든 서비스에서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검색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샌프란시스코=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 세계는 ‘삶2.0’시대로… 한국의 준비는?

지난달 말 실리콘밸리를 방문했다. LG유플러스는 ‘탈(脫)통신’을 표방하는 회사다. 통신이 아닌 다른 정보기술(IT) 분야의 혁신 사례를 우리의 서비스에 접목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북쪽으로는 샌프란시스코부터 남쪽으로는 새너제이까지, 실리콘밸리를 돌면서 엄청난 변화의 물결에 깜짝 놀랐다.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가능성, 그리고 스마트폰이 연 모바일 사업의 가능성은 자연스럽게 지역기반 사업들을 성장시켰고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이번 방문에서 새로운 화두를 던져줬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협업 소비(Collaborative Consumption)’라는 개념이다. 더 넓은 의미에서는 ‘공유 경제’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개인이나 개별 기업이 스스로 모든 걸 소유하는 대신 소유권을 갖고 있는 다른 개인 또는 기업의 자원에 접근해 이를 빌려 쓸 권리를 얻는 방식을 뜻한다.

예를 들어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있는 로켓스페이스라는 기업은 갓 창업한 회사에 사무실과 각종 집기를 임대해 주는 회사다. 단순히 공간과 기구만 빌려주는 게 아니라 입주기업을 위해 선배 창업자를 초청한 뒤 경험을 들려주기도 하고, 서로 네트워크를 만들 기회도 준다. 이 덕분에 이미 93개나 되는 창업회사가 이곳에 입주해 있다. 동아일보 공유 경제 시리즈에도 소개된 일종의 ‘소셜 민박’ 모델인 에어비앤비와 비슷한 윔두라는 회사도 여기 입주해 있다. 이들은 최근 9000만 달러(약 1031억 원)를 투자받으며 자금 걱정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로켓스페이스를 떠나지 않았다. 공유 경제 모델이 주는 효과 가운데 하나가 사람들과의 만남인데 이를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공유 경제는 또 일상생활을 혁신한다. 과거 ‘참여와 공개 및 공유’가 웹2.0이라 불리던 트렌드를 이끌었다면 최근에는 우리의 생활이 웹2.0화되고 있는 것이다. 즉 ‘삶(Life)2.0’의 시대다. 웹2.0이 온라인 상품에 대한 개인의 접근을 가속화하고 혁신을 이끌었다면 최근 불고 있는 공유 경제와 같은 삶2.0의 트렌드는 오프라인 상품에 대한 개인의 접근을 가속화하고 혁신을 이끈다. 대부분의 공유 경제 모델이 숙소, 자동차, 도구, 사무실, 음식, 땅 등 실물에 기반한 비즈니스를 혁신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웹2.0이 온라인 콘텐츠에 대한 소유의 모델을 빌려 쓰고 공유하는 모델로 바꾸어 갔던 것처럼 공유 경제의 모델은 오프라인 재화도 빌려 쓰고 공유하는 방식으로 변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개별 재화가 사회 전체에 미치는 가치는 더 증가한다는 게 공유 경제, 즉 삶2.0의 특징이다. 한국 기업들도 이런 트렌드를 이해하고 따라잡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조산구 상무 LG유플러스 오픈이노베이션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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