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경쟁? 대기업, 골목상권 무차별 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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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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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해오던 사업영역에 대기업이 대대적으로 진출하면서 중소기업이 망하리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를 폐지한 2006년 이후 대기업은 주력업종과 무관한 외식업, 상조업, 주류유통, 교육사업 등을 전담하는 계열사를 늘리고 있다. 중소기업은 동반성장위원회가 추진 중인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제도’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대기업은 이 제도가 글로벌시대에 해당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 대기업의 영토확장 어디까지

인천에서 10년 넘게 제과점을 운영하던 A 씨는 얼마 전 가게를 정리했다. 최근 3년 사이 반경 500m 내에 베이커리 체인점 두 곳이 들어선 것도 모자라 커피전문점까지 우후죽순 생기면서 하루 매출이 10만 원도 안 되는 날이 허다했다. A 씨는 “그나마 내 건물이라서 버텼지 월세 내던 동네 빵집들은 진작 망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마트피자, 통큰치킨 등 그간 주로 논란이 됐던 품목은 롯데와 신세계 같은 대형 유통업체와 자영업자의 대립 구도였다. 하지만 더 들여다보면 유통업체가 아닌 대기업이 ‘골목상권’이나 영세업종에 진출하는 기세가 더 무섭다.

과거 중소 수입업체가 주도했던 와인이 대표적이다. 2000년대 들어 와인이 인기를 끌면서 LG가 트윈와인, SK가 WS통상, 보광그룹이 아미뒤뱅 등을 세웠다. 막걸리의 인기가 높아지자 기존에 주류사업을 하던 롯데와 진로 외에 CJ와 오리온 등도 앞 다퉈 막걸리 사업을 벌이고 있다.

외식업계는 이미 대기업이 상당 부분 장악했다. SPC그룹의 파리바게트와 CJ의 뚜레쥬르가 출점 경쟁을 벌이면서 동네 빵집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롯데, CJ, 대상, 호텔신라 등이 레스토랑, 베이커리, 커피전문점 등을 공격적으로 키우고 있다.

‘돈 되는 사업’으로 알려진 상조업에도 대기업 진출설이 파다하다. 대우조선해양이 2008년 대우조선해양상조라는 자회사를 만들어둔 데 이어 삼성이 에스원을 통해 상조업에 진출한다는 소문이 돌자 중소 상조업체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주로 지방자치단체와 계약을 해 사업을 유지하던 오폐수처리 업종도 대기업이 휩쓸고 있다. SK, 코오롱, 한화 등이 모두 수처리 사업을 벌이고 있고, LG는 정수기 시장에 뛰어들어 중견업체의 원성을 사고 있다.

○ ‘보호’가 ‘약화’로 변질될 수도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동반성장위가 2006년 폐지된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를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제도라는 이름으로 다시 꺼내든 것도 이 때문이다. 동반성장위는 신산업과 전통산업을 나눠 중소기업에 적합한 업종과 품목을 연구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6월경이면 해당 업종과 품목이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에 대한 대기업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형식적으로는 ‘자발적으로 진입하지 말라’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규제가 된다는 이유다. 계열사가 동반성장지수 평가 대상 56개 기업 가운데 포함돼 있는 한 그룹 관계자는 “말로만 자발적이라고 했을 뿐 결국 평가할 때 점수를 깎을 것 아니냐. 이미 시작한 사업을 접을 수도 없고 난감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을 보호하자는 제도가 결과적으로는 중소기업을 영세화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과거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보호받은 업종 가운데 상당수가 중소기업 간의 과당 가격경쟁으로 도태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고유업종제도가 시행될 당시 전체 제조업 대비 고유업종의 각종 지표가 악화되기도 했다. 전체 제조업 가운데 중소기업 고유업종이 차지하는 생산액 비중은 1991년 12.6%에서 2001년 8.3%로 줄었다. 부가가치 비중도 같은 기간 11.6%에서 7.7%로 감소했다.

김필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여러 업종에서 대기업이 품질경쟁을 하면 중소기업이 따라잡는 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대기업이 빠져나간다면 중소기업끼리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은 가격경쟁뿐”이라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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