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일과 삶]유르겐 쾨닉 한국머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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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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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잡채요리 해보니 레시피 무궁무진”

요리는 팀워크다. 유르겐 쾨닉 한국머크 사장(왼쪽에서 세 번째)은 임원진 가운데 새 멤버가 생기거나 기존 멤버가 떠나면 임원진 전체를 집으로 불러 함께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 임원들도 직접 당근을 썰고 국수를 삶아야 한다. 쾨닉 사장은 이런 요리모임마다 임원들의 이름을 새긴 앞치마를 각자에게 나눠준다. 두 달 전 열린 세 번째 요리모임. 사진 제공 한국머크
요리는 팀워크다. 유르겐 쾨닉 한국머크 사장(왼쪽에서 세 번째)은 임원진 가운데 새 멤버가 생기거나 기존 멤버가 떠나면 임원진 전체를 집으로 불러 함께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 임원들도 직접 당근을 썰고 국수를 삶아야 한다. 쾨닉 사장은 이런 요리모임마다 임원들의 이름을 새긴 앞치마를 각자에게 나눠준다. 두 달 전 열린 세 번째 요리모임. 사진 제공 한국머크
#1. 애피타이저

“결혼 전이었어요. 매주 목요일에 친구들을 집으로 불렀죠. 직접 요리를 해주기 위해서요. 정성을 나누는 즐거움은 무엇도 대신할 수 없죠. 그거 아세요? 독일 격언에 ‘사람의 마음에 이르는 길은 그의 위(胃)를 통해 가는 길’이란 말이 있어요. 전 그 말을 믿어요. 이 목요일 저녁 식사에 오던 친구 가운데 한 명이 지금의 아내가 됐거든요.”

유르겐 쾨닉 한국머크 사장은 소문난 요리사다. 식당을 차렸다거나 전문 조리사 자격을 얻은 건 아니지만 요리를 수십 년 동안 즐기며 수많은 친구와 동료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독일은 요리로 유명한 나라는 아니지만 브라질계 독일인인 그는 페루계 스위스인인 아내를 만났고, 세계 각국의 유명 음식을 만든다. 헝가리의 대표음식인 구야시부터 러시아 요리인 비프 스트로가노프, 한국요리 잡채와 이탈리아 디저트 티라미수까지 동서양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음식이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진다.

요리의 무엇이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 그는 질문에 곧장 대답하지 않고 요리와 자신의 삶, 아내를 만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서양 요리는 늘 이렇게 시작되곤 했다. 위에 음식이 넘어간다는 신호를 주기 위한 애피타이저부터.

#2. 나를 위한 메인요리

“구야시 아세요? 헝가리 음식. 그걸 어떻게 드세요? 아, 먹어보진 못했다고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쇠고기 구야시만 먹어요. 그런데 꼭 그렇게 만들라는 법은 없죠. 생선 구야시, 닭 구야시…. 음식은 창의력을 발휘할 때 맛있어져요. 전 음식을 늘 다른 방식으로 만들죠. 예를 들면 소시지 구야시처럼. 들어본 적 없으시죠?”

쾨닉 사장에게 요리가 주는 즐거움은 난관에 부닥쳤을 때 이를 돌파하고 느끼는 성취감과 같다고 했다. 그 또한 언제 먹어도 한결같은 맛을 주는 음식을 좋아한다. 하지만 자신이 만드는 음식은 그렇게 요리하지 않는다. 백번이고 천번이고 같은 음식을 만들어도 꼭 다른 맛이 나도록 다른 방법을 쓴다. 경영자가 하던 일을 반복하면 새로운 성과를 만들어내기 힘든 것처럼 요리에서도 새로운 성취를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최근 푹 빠진 한국요리가 있다. 바로 잡채다.

“잡채에는 ‘원래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이 거의 없어요. 뭔가 면이 들어가고, 야채가 들어가고, 고기가 들어간 뒤 불 위에서 기름과 함께 볶는 요리죠. 가끔은 당면 대신 이탈리안 파스타를 넣어보고, 인도풍의 느낌을 내기 위해 카레를 약간 쓸 때도 있어요. 잡채는 자유롭고 도전정신을 자극하죠.”

#3. 그리고 팀을 위한 메인요리

그가 가장 최근에 만든 잡채는 특별했다. 혼자 만든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함께 잡채를 만든 사람들은 한국머크의 임원들. 유럽 기업들이 흔히 두는 ‘집행위원회(executive committee)’에 속하는 최고 임원들이 요리사였다.

“2년 전부터 이 행사를 시작했는데, 두 달 전 세 번째 모임을 가졌어요. 임원 중 멤버 구성에 변화가 생길 때마다 팀워크를 다지기 위해 임원진을 제 집으로 초대하거든요. 저는 애피타이저와 디저트를 만들고 재료를 사다 놓죠. 그러면 메인요리는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잡채가 메인요리였죠. 임원들은 직접 역할을 나눠 맡아요. 누구는 양파를 까고, 누구는 시금치를 데치고…. 함께 좋은 요리를 만들어낸다는 목표의식을 갖고 서로의 약한 부분을 보완하며 성과를 내는 거죠. 그리고 그 성과를 다 함께 즐기며 공유해요. 놀라운 일도 벌어졌습니다. ‘요리라곤 해본 적이 없다’던 임원이 있었는데 그 사람 덕분에 잡채가 창조적으로 완성됐거든요. 그 사람 스스로도 놀랐어요. 함께해서 가능한 것이었죠. 팀워크를 다지는 데 요리보다 더 좋은 수단이 있을까요? 전 찾지 못했습니다.”

#4. 디저트

쾨닉 사장은 러시아 요리인 비프 스트로가노프를 즐겨 만든다고 했다. 고기와 갖가지 채소를 이용한 소스를 함께 먹는 요리인데 잡채처럼 다양한 변주가 가능해서 좋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디저트인 티라미수도 아주 좋아하는데 한번은 식당에서 ‘잊을 수 없는 맛’의 티라미수를 먹은 뒤 요리사에게 애걸하다시피 해 레시피를 얻어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요리와 음식 문화를 사랑하는 그에게도 한국은 새로운 충격이었다. 맵고 짠 음식 때문이 아니라 “독특한 음식문화에 감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녀보세요. 모두 자기 접시에 음식을 덜어 먹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접시에 놓인 음식을 각자 따로따로 소비하죠. 그런데 이 나라에선 다릅니다. 한국에서는 만들어진 음식이 사람들의 한가운데 놓이는 큰 접시에 담겨 나오고,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서로 상대의 음식을 덜어주겠다며 대화와 배려에 앞 다퉈 나섭니다. 함께 요리해서 나눠 먹는 즐거움은 이런 문화에서는 몇 배로 커지죠. 이런 식사문화가 우리의 팀워크에 도움을 준 건 물론이고 제 삶에도 즐거움을 줍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 유르겐 쾨닉 사장은


―1954년 브라질 상파울루 출생

―1977년 바스프 입사

―1998년 파키스탄 바스프 사장

―2001년 파키스탄 머크 사장

―2008년 한국머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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