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MBA통신]“결론은 중요하지 않다… 선입견 뛰어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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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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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경영대학원 토머스 디롱 교수 수업 지상중계

토머스 디롱 교수
토머스 디롱 교수
《캐런 리어리 씨(37)는 메릴린치증권의 미국 시카고 지점장이다. 최근 부임한 그는 시카고 근교에 거주하는 대만 화교들이 아직 증권사를 많이 이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는 이 시장을 개척하려고 대만계 미국인인 테드 청 씨(41)를 고용했다. 청 씨는 일을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600만 달러를 보유한 VIP 고객 한 명을 데려왔다. 하지만 리어리 지점장의 마음은 편치 않다. 청 씨는 지점의 문화에 잘 융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리셉션 데스크에서 일하는 젊은 여비서가 청 씨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그는 “나한테 그런 일을 시키다니”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청 씨는 지점의 어느 누구와도 교류가 없고 사적인 대화도 하지 않는다.

더욱이 청 씨는 종종 리어리 지점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 리어리 지점장은 청 씨에게 잠재고객에게 콜드 콜(cold call·영업직원들이 사전 동의를 얻지 않고 불시에 고객에게 전화하는 행동으로 고객들이 싸늘하게 반응할 때가 많다는 점에서 유래한 단어)을 해보라고 했지만 이를 무시했다. 오히려 대만계 고객은 전화보다 점심을 같이하는 걸 더 좋아한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그는 고객과의 점심에 몇 시간을 소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청 씨는 리어리 지점장에게 “개인사무실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지점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도 아직 개인사무실이 없다. 리어리 지점장은 “다른 직원과의 형평성 때문에 사무실을 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자 청 씨는 “사무실을 내주면 더 많은 고객을 데려오겠다”며 재차 요청했다. 당신이 리어리 지점장이라면 청 씨에게 사무실을 내주겠는가?

이는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HBS) 토머스 디롱 교수의 ‘리더십과 조직행동’ 수업에서 나온 사례다. 모건스탠리의 최고인사책임자 출신인 디롱 교수는 인간과 사회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자극하고, 활발한 토론을 유도한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세계 유수의 경영대학원 재학생들이 직접 현장 소식을 전하는 ‘MBA통신’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 재학 중인 안찬호 씨가 DBR 69호(11월15일 발간)에 소개한 수업내용의 일부를 전한다.》

“크리스, 자네가 리어리 지점장이라면 청 씨에게 사무실을 내주겠나?”

디롱 교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교실을 울린다. 오늘은 동료학생 크리스가 교수로부터 콜드 콜을 받았다. 수업시간의 콜드 콜은 교수가 90명의 수강생 중 무작위로 한 명을 뽑아 그에게 긴 발표를 맡기는 방식. 익숙할 때가 됐는데도 언제나 떨린다. 혹시 그 학생이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다음 타깃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서다. 다행히 크리스는 청산유수로 말을 이어갔다.

“저라면 절대 사무실을 내주지 않겠습니다. 첫째, 청 씨가 다른 직원에 비해 더 나은 성과를 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직 고객을 한 명밖에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그것만으로는 그가 영업력이 뛰어난지, 운이 좋았는지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청 씨는 조직문화에 잘 융화하지 못했습니다. 그에게 사무실을 내준다면 다른 직원들의 업무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셋째, 지점장의 권한에 도전하는 부하직원에게 순순히 사무실을 내준다면 리더십에도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모건스탠리의 최고인사책임자 출신인 토머스 디롱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수업은 학생들을 자극하고 활발한 토론을 유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전달한다. DBR 그래픽
모건스탠리의 최고인사책임자 출신인 토머스 디롱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수업은 학생들을 자극하고 활발한 토론을 유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전달한다. DBR 그래픽
디롱 교수는 크리스가 말한 내용을 열심히 칠판에 적고 있었다. 여성운동가 출신으로 경영학석사(MBA)와 정치학석사 과정을 함께 공부하고 있는 맥스가 손을 든다.

“동의합니다. 과거 청 씨가 보여준 행동은 비정상적일 때가 많았습니다. 상사의 권위에 도전했고, 여비서의 간단한 요청을 무시하는 등 여성에게 적대감을 드러냈습니다.”

다른 학생들의 대답도 이어졌다. 대부분 청 씨에게 사무실을 내줄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언급만 쏟아졌다. 디롱 교수가 나섰다.

“여러분이 리어리 지점장이었다면 청 씨는 사무실을 얻지 못했겠네요. 청 씨에게 사무실을 내주어야 한다는 의견은 없나요?”

갑자기 교실이 조용해졌다. 청 씨에게 불리한 내용만 오가다 보니 그에게 사무실을 내주는 일도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모두 망각하고 있었다.

필자는 ‘이 기회에 발표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모두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청 씨가 과연 자신을 위해 사무실을 달라고 했느냐는 점입니다. 청 씨는 리어리 지점장이 사무실을 내주면 더 많은 클라이언트를 데려오겠다고 했습니다. 아시아에서 일한 경험에 비춰보면 개인사무실은 클라이언트에게 회사 내 입지나 위상을 알리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이 관점에서 VIP 고객을 끌어오기 위해 사무실이 필요하다는 청 씨의 요청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닙니다.”

교실이 술렁거렸다. 중국 GE에서 일했던 헬렌도 거들었다.

“저도 동의합니다. 유교사상이 강한 아시아 국가에서 나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청 씨는 41세로 지점장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그에게 젊은 여비서가 일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건 오만불손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디롱 교수의 표정이 ‘이제야 내가 기대했던 토론이 이뤄지는구나’로 바뀌었다.

“좋아요. 그럼 한번 상황을 달리 해보죠. 마이클, 자네는 리어리 지점장이 되는 거야. 제레미는 청 씨의 역할을 하게. 여러분, 이 두 사람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나 봅시다.”

마이클과 제레미는 졸지에 상황극의 주인공이 돼 각자 왜 사무실을 내줄 수 없는지, 왜 사무실을 얻어야 하는지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교실 내 88명의 학생과 교수는 이를 낱낱이 지켜봤다.

상황극이 끝난 후 디롱 교수는 케이스의 실제 결론을 설명했다. 결국 리어리 지점장은 청 씨에게 사무실을 내주지 않았다. 청 씨는 자신이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는 회사에서 일할 수 없다며 사표를 냈다. 리어리 지점장은 청 씨와 같은 대만계 미국인 직원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적당한 인물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디롱 교수가 말했다.

“여러분, 이 케이스가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여러분이 졸업 후 청 씨나 리어리 지점장처럼 문화적 인종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들과 어떻게 융화하며 소통할지 지금부터 미리 익혀둬야 합니다. 아시아에서 살지 않았다면 청 씨가 오만하고 여성을 차별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게 선입견일 수 있습니다.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그 선입견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우리는 완벽한 인간이 아닙니다.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교수의 말이 끝나자 우렁찬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찬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Class of 2012 cahn@mba2012.hbs.edu

정리=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69호 (2010년 11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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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수익 극대화할 수 있는 가격 전략은?

▼ McKinsey Quarterly


한 의료장비 제조업체는 6∼18개월 간격으로 주력 제품을 업그레이드한 새로운 버전의 신제품을 내놨다. 새 제품이 나오면 기존 제품보다 일괄적으로 몇 퍼센트 가격을 올렸다. 혁신적인 기능 개선이 이뤄져도 이런 식의 가격 정책을 고수했다. 소비자들이 기존 제품에서 신제품으로 쉽게 이전하도록 가격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기존 제품은 가격을 20∼40% 크게 내려 장기간에 걸쳐 판매했다. 신제품을 구입할 여력이 없는 소비자에게 저렴한 대체재를 제공하고 지속적인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계산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기존 제품의 할인 판매로 신제품 값도 추락하는 일이 발생했다. 소비자들은 기존 제품과 신제품이 창출하는 가치에 큰 변화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 이 회사는 신제품 개발을 위해 수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모든 제품 라인의 평균 가격이 해마다 떨어지는 문제에 직면했다. 회사가 자기 혁신을 할수록 성과가 하락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문제는 가격 전략에 있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을까. 장기적 관점에서 제품의 수명주기까지 고려한 새로운 가격 전략 솔루션을 소개한다.



‘결정적 순간’에 강한 기업이 장수한다

▼ 경영거장 탐구


한 기업이 오랜 기간 생존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 기업들의 평균 수명은 불과 10년 남짓이다. 특히 80%에 가까운 기업들이 창업 후 30년 이내에 사멸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떤 기업이 100년, 200년을 생존할까. 높은 성과를 창출하는 우량기업일까? 학계의 엄밀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성과와 생존은 거의 상관관계가 없다. 심지어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놀라운 연구결과도 있다. 이는 분석의 단위를 개인으로 바꿔도 비슷하다. 높은 성과를 내고 좋은 인사고과 점수를 받는 사람이 높은 직위로 승진하느냐의 문제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난다. 궁극적으로 최고위직으로의 승진 여부는 그 이전까지의 성과, 즉 인사고과와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일상적 성과가 장기 생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지만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기회나 위기와 같은 ‘결정적 순간(critical moment)’의 성과는 기업의 장기 생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장수기업은 결정적 순간에 효과적으로 대처해 기업의 수명을 늘렸다. 인사고과가 뛰어난 인재가 어느 순간 갑자기 몰락하거나 평범한 사람이 결정적 순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며 롱런하는 이유다. 결정적 순간에 대한 통찰을 통해 ‘장수기업’의 비결을 소개한다.



무너진 갱도에서 피어난 영적 리더십

▼ Lessons from the Past


얼마 전 칠레 산호세 광산에서 광원 33명이 무너진 갱도에 갇혔다가 사고 69일 만에 무사히 구출됐다. 매몰된 광원들의 극적인 귀환은 칠레는 물론 세계를 흥분시켰다. 광원들은 암흑 속 지하 갱도에서 처음 17일간 48시간마다 비스킷과 두 스푼 분량의 참치로 연명했다. 일부 광원은 자신이 굶어 죽으면 다른 광원들에게 먹힐 것을 두려워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구출된 광원들은 이처럼 극한의 상황에서 생명을 부지한 사람답지 않게 건강하고 활기가 있었다. 이들은 어떻게 지하 갱도의 암흑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정상적인 정신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이는 극한 상황 속에서 행정리더, 보건리더, 영적리더 등 3가지 다른 역할을 지닌 리더십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덕분이다. 현대 비즈니스 리더들은 행정리더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현대 기업 현장에서는 이윤 추구 등 세속적 이슈를 떠나 높은 수준의 가치에 대한 신념을 실천하고 확산시키는 영적리더십이 절실하다. 조직원들이 주어진 상황 속에서 목표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이끈 영적 리더십의 요체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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