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정상회의 이후]한국 ‘룰 만드는 나라’ 기반… 경험부족 절감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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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합의문이 발표된 12일 오후 정부의 한 관계자는 ‘코리아 이니셔티브(한국이 주도한 의제)’인 글로벌 금융안전망과 서울 개발 컨센서스(개발이슈)의 합의문 내용을 읽고 또 읽었다.

이 관계자는 “선진국이나 국제기구들이 정해주는 규칙을 따라가기만 하던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대출 방식을 ‘위기 수습’에서 ‘위기 예방’으로 바꿨고,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개발도상국 개발모델을 만들었다는 게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G20 서울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의 위상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선진국들이 정해 놓은 규칙을 따라가는 ‘룰 팔로어(rule follower)’였다. 그러나 한국은 올해 G20 서울 정상회의 의장국으로 활동하며 선진국들과 함께 국제사회의 규칙을 세우는 ‘룰 세터(rule setter)’로 성장할 계기를 마련했다.

6월 미국 워싱턴의 미주기구(OAS)에서 열린 한국 정부의 중남미 개도국을 대상으로 한 ‘개발이슈 설명회’ 때 참석한 한 고참 외교관은 행사장에 들어서면서 자신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대형 회의실은 수십 개 나라와 국제기구 관계자들로 꽉 차 있었고 형광펜으로 한국이 사전에 전달한 참고자료에 줄을 그어가며 ‘공부’하는 이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20년 넘는 외교관 생활 중 외국 관계자들이 한국의 목소리에 그렇게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던 G20정상회의준비위원회 사무실은 올해 세계 경제의 핵심 정보가 모이는 ‘허브’였다. 의장국으로서 정책 조율을 해야 했기에 각국 정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등의 보고서들이 집중됐다. G20준비위 고위 관계자는 “세계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IMF와 WB의 중요한 보고서들이 어떤 메커니즘과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하게 됐다”며 “G20 의장국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쉽게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감 못지않게 ‘아직 멀었다’는 냉정한 현실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고 G20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이들은 ‘전통 선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의 막강한 영향력을 강조했다.

특히 6월 말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제4차 G20 정상회의에 앞서 각국 차관들이 모여서 한 성명서 조율 작업은 4대 강국의 위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당시 핫이슈였던 재정 건전성에 대해 유럽과 미국의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자 이 4개 국가 대표들이 따로 휴식시간 때 모였고 사실상 이들이 논의한 대로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정부 관계자는 “한국이 기존의 룰 세터들과 정말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G20과 관련된 대화를 나눌 때마다 “다양한 이견을 조정하고 결론을 도출해내야 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지식과 경험의 부족을 절감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털어놓았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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